명동 백제삼계탕에서 뒤늦은 복달임을 하고 배 두들기며 나오려는데 오사랄 장대비가 꼭 맞으면 골통이 뚫릴 것처럼 좍좍 내리꽂히고 있었다.
요즘은 행복하다.
안간힘을 쓰며 이루려던 것도 없었지만, 아무튼 걱정거리란 것이, 한 번 내려놓자고 하니 그저 남의 일만 같은 것이다. 어떻게든 되겠거니.
우산이 없어서 문간에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침묵. 옆에는 일본인 부부가 소리죽여 소근소근 얘기하고 있고. 그때 다른 일본인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오다가 짐을 떨어뜨렸다. 일본인 부부 가운데 아내가 짐을 주워 주니, 짐 주인이 "상큐"라고 답했다. 여자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이, 사람 사는 것이 기본 선율의 변주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가 아는 형에게 욕을 먹은 적이 있다. 뭘 안다고. 그때는 주눅이 들어 말을 못했다만 지금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형, 그건 그런 뜻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삶도 알고 싶어졌다는 말이었어.
땅바닥을 후려갈기던 비가 점점 잦아들고, 그 덕에 잠시나마 한 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발길을 재촉해 뿔뿔이 흩어졌다. 아직 빗기가 남은 공기는 눅눅하고, 사람들 몸에서 피어나는 체온이 아지랑이처럼 명동바닥을 메우고 있었지만, 짜증은 일지 않았다. 길바닥에 고인 빗물과, 급하게 덮어 두었던 비닐을 걷고 있는 노점상들, 그 와중에 군것질 거리를 사러 온 아르바이트 청년. 누군가는 명동 거리를 "휘황한 신기루" 운운할는지 모르지만, 또 아주 틀린 말도 아니지만, 그곳이 보금자리인 사람들이 있다.
밤이 되면 잠잘 곳을 찾아 모두들 들어가겠지. 벌집 같아.
비에 젖은 도시는 끈적하고, 야성적으로 달콤하다.
우산을 들고 오지 않은 날이면 꼭 비가 오더라.
나도 끈적거리고 야성적으로 달콤해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