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의 야지 키타 (眞夜中の彌次さん喜多さん, 2005)
감독 : 쿠도 칸쿠로, 일본, 코미디, 뮤지컬, 판타지, 123분
3월 말에 친구사이 후원을 목적으로 하는 강좌가 열립니다. 저랑, 청년필름 김조광수 대표, 그리고 박진영 프로그래머 세 명이 각기 다른 날 다른 주제로, 한 편의 퀴어 영화를 상영하고, 주제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는 강좌입니다.
제가 맡은 주제는 '세계 퀴어 영화의 최전선으로의 여행'. 뭐가 최전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암튼 영화 한 편 틀고 거창하게 주제를 잡아서 사람들을 호객하자는 것이니 너그러이 이해하시길.
상영작에 관해 며칠 고민을 하긴 했어요. 그렉 아라키의 미스테리어스 스킨 Mysterious Skin, 터키 아타만 감독의 Lola and Billy the kid, 그리고 일본의 '한밤 중의 야지 기타'를 놓고 조금 방황을 했더랬습니다. 미이케 다카시의 '46억년의 사랑'을 구할 수 있다면 단연 이 영화가 이번 상영작으로 꼽혀야 하겠지만, 구할 도리가 없네요. (실은 구했지만, 홍보와 자막 작업을 하려면 시간이 없다는.)
여하간 제가 이번 상영작으로 결정한 것은 코믹 뮤지컬 퀴어 영화인 '한밤 중의 야지 기타'입니다. 세상과의 타협을 기묘하게 아동 성추행에 관한 교훈극으로 대처하고 있는 그렉 아라키의 '미스테리어스 스킨'은 다소 힘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그리고 아타만 감독의 'Lola and Billy the kid'는 너무 우울하다는 점에서 탈락된.
지난 번 일본 인디필름 페스티벌 상영작으로 스폰지에서 상영된 바 있는 '한밤 중의 야지 기타'는 그야말로 코믹과 뮤지컬과 그리고 온갖 총천연색 유치함이 가득한 게이들의 파란만장 서유기 버젼으로 봐도 무방할 겝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쿠도 칸쿠로 감독의 필모그라피가 흥미로운데, 그 악명 높은 B급 영화 '제브라맨',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 '69' 등의 각본가 출신이지요.
이 영화는 야지와 기타라는 게이 커플이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모 포털의 시놉시스를 그대로 옮겨놓으면,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게이 커플 청년 둘이 여행을 하면서 벌어지는 각양각색의 모습들을 그린 황당함이 가득한 판타지 코미디물. 일본 만화 작가 시리아가리 고토부키(しりあがり壽)가 그린 3편의 원작을, 영화 <고>(2001)와 <핑 퐁>의 작가 쿠도 칸쿠로(宮藤官九郞)가 영화화한 그의 감독 데뷔작으로, 원작에 대한 이해나 혹은 영화 전반에 펼쳐지는 짙은 일본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면 온통 썰렁하고 유치하게 느낄 수 있다.'
시놉시스에 적힌 대로 취향에 따라 극명하게 평가가 엇나갈 수 있긴 합니다만, 하이브리드 장르에 대한 이해, 그리고 유치함을 미덕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문화적 관용만 갖추고 있다면 기절초풍할 유머로 가득한 영화로 재밌게 관람하실 수 있을 겝니다. 시대를 가로지르는 멋진 환상극이지요. 야지와 기타가 두 손을 잡고 우스꽝스러운 토끼걸음으로 에도 시대의 시골길과 21세기의 신주쿠 거리를 뛰어다니는 장면만으로도 이 영화는 강추입니다.
우리의 동아시아 꽃돌이 츠마부키 사토시의 우정 출연 씬을 보는 것도 관람 포인트.
강좌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곧 공지 올립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