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매니지먼트 사를 돌아다니다가 포기하고, 스텝들과 함께 서울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길거리 캐스팅을 하기도 했지만 '굿 로맨스'의 남자 주인공을 찾아내지 못했었다. 길거리에서 만난 어린 남자에게 삼고초려도 해보기도 했고, 시나리오를 읽고 도망간 놈 앞에서 좌절도 겪었다. 그러기를 몇 달, 프랑스에서 돌아온 직후, 현진군은 내게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매니지먼트 사의 파일 하나를 건네주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는 어느 소년의 사진이었다.
미현 씨, 그리고 녀석과 함께 굿 로맨스를 찍었다.
그 후, 녀석은 방송연예에 관한 대학에 들어갔다가 군대에 다녀왔다. 소년에서 남자로 변해 있었다. 물렁살의 소년에서 근육질의 남자로 변해 있었다. 남자로 변한 것뿐만 아니라, 세상물정에 관해 무관심해하던 소년에서 영화배우가 되고자 밤잠을 설치며 돌아다니는 독기 품은 젊은 청년으로 변해 있었다.
오늘 밤늦은 시각,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건이 하나 있어. 형이랑 함께 이 영화에 미쳐야 돼."
지금 일하고 있는 매니지먼트 사를 때려치우라는 과격한 요구인 셈이다. '야만의 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이 녀석을 염두에 두었고, 이 녀석이 잘하는 몸 동작, 얼굴 표정을 머릿속에 그려가며 써내려갔다. 조금 과장하자면, 이 영화는 애초부터 녀석이 아니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그런 영화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녀석이 제대하기를 기다렸었다.
일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영훈이를 고집했던 건, 내가 이 영화에 미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끝으로 당분간 찍지 않을, 10여 년 동안의 내 퀴어 영화에 종지부를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누누히 이야기하듯, 내게 영화를 찍는다는 건 배우를 사랑한다는 것의 동의어다.
다음 주부터 나는 촬영에 앞서 한 달 동안 이 녀석과 함께 거기, 그곳, 영화라는 허구의 세계가 실재가 되는 그곳으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독기 품은 젊은 청년을 영화배우로 닦아내고, 깎아내는, 더불어 나 역시 닦아내지고 깎여지는 그런 몰입의 원근법 속으로.
Israe Kamakawiwo | Somewhere Over The Rainb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