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 친구사이 강촌 여행을 갈 때 기차 안을 꽉 메우고 소란을 피우던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은 자신들을 가리켜 자칭 '무지개 원정대'라고 그랬다. 무지개를 잡으러 강원도로 캠프를 떠난다나. 그러자 친구사이의 동생 한 명이 키득거리며 아주 조그맣게 말했다.
"야, 너희들도 우리랑 같구나."
도로시가 구두 뒷굽을 탁탁, 치고 토토랑 함께 저 하늘로 날아가 잡으러 간 게 무지개가 맞다면, 무지개 원정대나 조그맣게 키득거리며 웃었던 그 동생들의 꿈이 그리 허황되지는 않을 터. 나도 가끔은 뒷굽을 탁탁, 치고 하늘로 훌쩍 날아가 무지개든 구름이든 아니면 저기 늘 하늘의 크기만큼 반짝이는 태양을 잡으러 떠나고 싶다. 도로시처럼 마법의 구두 뒷굽을 탁탁...
핑퐁 공처럼 오가는 저 야박한 태양의 시간은 바삐 흘러가고, 나는 이따금 소심증과 무기력증에 빠진 소시민들과의 대화가 한없이 우울해져 이런 게 다 무슨 소용 있을까 하는 나른한 권태. 차라리 그럴 바에야 태양을 잡으러 구두 뒤축이 다 뜯어지고 망가질 때까지 탁탁, 탁... 내 머리 위로 태양이 흘러가고 구름이 미끄러지며 붉은 황혼빛과 푸른 아침빛이 서로 머리끄댕이를 잡고 쌈박질을 하든 말든, 저 태양 하나 잡으러 가야겠단 신념을 불태우며 오늘도 내일도 구두 뒷굽을 탁탁, 탁...
Listen To The Warm | Rod McKuen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 쥬디 갈란드는 4, 50년대 미국 게이들의 숭배 대상이자 결정적인 아이콘이었습니다. 그녀가 47세로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자살했을 때 많은 이들은 충격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콘서트는 게이 미팅의 장소였으며 때로 그녀는 게이 피아노 바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답니다. 또, 그녀의 아버지와 다섯 명이나 되는 그녀의 전 남편들 중 두 명은 게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왜 '쥬디 갈란드는 게이 아이콘이었을까?'
그건 쥬디 갈란드가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였기 때문입니다. 잘 알다시피 '오즈의 마법사'는 미국 공황 시대의 우화이면서 왕따 당하는 군상들이 무지개 너머의 이상향에 간다는 환타지이기도 합니다. 당시의 억압적인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게이들에게 도로시는 '오즈'가 허락하는 감정적 해방과 자유를 의미했고, 게이들은 오즈의 마법사와 함께 쥬디 갈란드에게 전폭적인 사랑을 보냈던 거지요.
당시의 게이들은 또각또각 소리 나는 도로시의 구두 소리를 들으며, 도로시의 손을 잡고 무지개 너머로 날아가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 2004-11-14
아주 오래 전, 술 먹고 썼던 잡글. 작년 친구사이 엠티 다녀와서 썼네요. 곧 2005년 봄 엠티 간다죠?
웹진에 오랜만에 글 올렸습니다. 알란 튜링의 독사과.
http://chingusai.net/bbs/zboard.php?id=webzine&no=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