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엽, '삼국지를 보다: 인문과 그림으로 본 한중일 삼국지의 세계'
쪽팔리지만 제가 싸우는 얘기보다는 사랑하는 얘기--즉 액션보다는 멜로나 에로--를 훨씬 더 좋아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삼국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은 없네요. 하지만 동아시아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왔고 지금도 유명 작가들이 번역판을 내는 이 '고전'이 한중일 3국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또 미술로 표현됐는지 따라가는 이 책은 그림만으로도 눈이 호강합니다. 시대랑 나라에 따라 선호하는 인물이 달랐다는 점도 재미있구요. 기존의 주요 번역서랑 연구서도 반영하고 분석하니까 '삼국지' 길잡이로서도 훌륭하죠.
● 나카자와 케이지, '맨발의 겐' (1~10권)
2차 대전 말 일본 원폭 투하로 가족을 잃은 작가가 그린 만화인데, 슬픈 얘기 구석구석에 코믹하고 밝은 대목도 있어요. 맹목적 애국주의에 대한 비판, 일관적인 반전 평화주의, 그리고 조선인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돋보이죠. 특히 한국 사람으로서는 못내 불편한 일본 애니메이션 '반딧불이의 묘'하고 비교하면 얘기할 거리가 더 많아지겠네요. 그 때나 지금이나 자기 소신 갖고 남들하고 다르게 살기란 어렵다는 점을 새삼 일깨워주기도 합니다. 영어권에서도 번역 출간돼서 호평받았죠.
● 또 하나의 문화,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 - 친구사이 사무실 소장
제가 좋아하는 동인지 '또 하나의 문화' 17호인데, 마침 우리가 요새 진행 중인 동성애자 가족 구성권 사업하고도 관련이 있어요. 남녀, 노소, 일이반을 막론하고 평생 혼자 또는 누구하고 살 것인지 결정해야 되는 법이고 또 살다 보면 독립, 이혼 등으로 식구가 바뀌거나 없어지거나 생기게 마련인데, 이 책에는 20대랑 50대 얘기 둘 다 나오고 넓은 뜻에서의 '가족'에 대해 다양한 얘기가 실려 있어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죠. 물론 혈연 중심적인 이성애 가족이 절대선도 유일한 선택도 아니라는 점을 전제로 깔고 있구요.
● 박건웅, '꽃' (1~4권)
제가 좋아하는 80년대 민중 미술에서 자주 쓴 판화 기법으로 일제 시대 이래 우리의 현대사를 그린 만화책인데, 주제도 무겁고 선도 굵지만 서정적이고 코를 찡하게 만드는 대목도 많아요. 사실 그림만 봐도 눈이 즐거워지죠~
● 신동원, '호열자 조선을 습격하다: 몸과 의학의 한국사' - Dr. 김하나 개인 소장
의약 분업 파동, 드라마 '허준'과 '대장금'의 인기, 중의학/한의학의 갈등, 황우석 파동, FTA의 잠재적 여파... 기억력 안 좋은 제가 돌아봐도 지난 몇 년 동안 의학이 화제가 된 적이 꽤 많았는데, 이 책은 가까우면서도 먼 병원과 환자의 관계, 왜곡된 '히포크라테스 선서', 양약과 한약의 위상 변화 등 우리가 말 그대로 피부로 느끼는 궁금증과 불만을 하나하나 풀어줍니다. 서양의 근대 의학이 들어오면서 수명도 길어지고 한방으로 못 고치는 병도 치료하게 됐지만, 그게 한편으로는 문제도 많았다는 점도 일깨워주구요.
● 오수연, '아부알리 죽지 마'
아직도 진행 중이고 해결의 기미가 안 보이는 이라크에 반전 평화팀의 일원으로서 갔다 온 소설가의 수기입니다. 저자가 현지에서 작가들도 만나고 일반인도 만나는데, '우리'랑 '남'을 가르는 기준이 무엇이고 얼마나 타당한지 다시 한 번 묻게 만들죠. 정말 가슴 아픈 책이지만, 이라크 등지에 군대 보냈고 언제 철수시킬지 예측조차 할 수 없는 대한민국에서 사는 우리한테는 필독서라고 봅니다.
● 이은홍, '술꾼'
시사 만화가가 술에 얽힌 개인적인 추억이랑 사람들의 음주 행태 등을 만화로 풀어낸 책인데, 간결한 필치랑 촌철살인적인 감성이 술안주로 딱 그만입니다. 술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술을 먹어봤고 술 때문에 고생해봤거나 위로받아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내용이 많죠. 아, 쓰고보니 술 땡긴다~!
● 전인권, '남자의 탄생'
가수 전인권씨가 아닙니다...! 심리학 전공자도 아닌 정치 외교학 전공자가 자기 유년기를 돌아보고 분석한다는 설정 자체가 특이한데, 목표는 한국 사회에서 '남자'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키워지는지 알아보자는 거예요. 우리가 인권 운동이랑 퀴어 연구에서 늘 언급하는 '젠더'의 문제하고 직결되죠. 정신 분석학에 많이 기대기는 하지만, 중년의 한국 남자가 이렇게까지 자기 내면이랑 가족 관계를 솔직하고 철저하게 파고 들어가고 까발린다는 게 신선했어요. 우리 게이들 역시 사회적으로는 '남자'로 길러지기 때문에 소위 '남성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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