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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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접한 17세기에 실존한 학자의 내세에 대한 통찰입니다.
최면과 유체이탈을 통해 죽음후의 세상을 보고 책을 써낸 사람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인간의 능동적 의지로 파악하고 있는것이 흥미롭군요.
예수천국-불신지옥이라는 막연한 항등식보단 공감이 되는군요.

<이하 퍼온글>

스웨덴의 영성가가 자신의 파란만장한 영혼의 여행을 통해 목격한 '천국과 지옥'은 우리를 빛으로 휘감을 진정한 사랑의 거처였다.

죽은 뒤 천국이나 지옥에 이르려면, 영혼들은 먼저 중간 상태인 정령의 세계(The Spirit World)를 통과해야 한다. 영혼이 자신의 ‘진정한 성정’을 알게 되는 곳도 바로 이 세계이다. 스웨덴보르그에 따르면 ‘정령의 세계는 천국도 지옥도 아니다 (…) 죽은 뒤 인간이 처음으로 도달하는 곳’이며,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그곳에서 정령들은 이 세상에서의 삶에 따라 천국으로 올라가거나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다.
  

참된 본성을 향해 표류하는 죽은 이의 영혼

  이 최초의 자기 직면 이후에 영혼들은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참된 본성을 향해 표류하기 시작한다. 스웨덴보르그에 따르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두 개의 자질(qualities) 혹은 능력(powers)으로 이루어져 있다. 감성(intention)과 통찰(discernment) 혹은 사랑(love)과 이성(reason)이 그것이다. 인간을 이루는 것은 단순한 ‘인식’이 아니라 감성에서 비롯된 생각과 실제적인 행위인 것이다. 스웨덴보르그의 말처럼,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것은 그의 감성과 그로 인한 깨달음이지, 감성과 유리된 인식은 결코 아니다.
  
  영계가 존재의 상태이므로, 이곳에 기만이란 있을 수 없다. 이 세상에서야 말과 생각이 다를 수도 있지만, 영계에서는 우리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있는 그대로 경험할 수밖에 없다. 요컨대 영계에서는 모든 존재들이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과 몸짓을 통해 자신의 감정적 상태를 숨김없이 드러내게 된다. 때문에 스웨덴보르그는 인간으로서의 건전한 실존적 윤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의 참 모습은 외부적인 앎이 아니라 우리가 진실로 느끼는 것에 달려 있다. 대부분은 자신이 천국에 이르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며, 법을 고수하거나 외면적인 행위를 통해 교회의 명령을 지킴으로써 훌륭한 삶을 이끌어가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외면적인 행위는 결코 저 편에서의 위치를 결정짓지 못한다. 우리의 진정한 성정이 타인에 대한 참사랑과 자기에 대한 초월 욕구로 채워져 있다면, 우리는 분명 천국에 이르는 과정에 있다. 그러나 우리의 진짜 성정이 자기애와 탐욕과 시기, 방종, 타인에의 지배욕 등 자기애에서 비롯된 감정들에 집중되어 있다면, 외면적인 행위에 상관없이 우리는 지옥으로 추락한다.

  스웨덴보르그의 지옥은 끊임없이 회전하는 상태에 있다. 때때로 지옥에 대한 그의 설명은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와 윌리엄 S. 버로우(William S. Burroughs)의 악몽과 같은 비전들을 혼합한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배설물과 구토물에 형언할 수 없는 악취, 채워지지 않는 욕망, 지겨운 허기, 끝없이 펼쳐진 암흑 그리고 아귀다툼하는 영혼들의 장광설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다. 천국에서처럼 지옥의 영혼들도 집과 도시를 이루며 산다. 그러나 천국의 거처가 천상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반면, 지옥의 집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몇몇 지옥에서는 대화재로 인해 스러진 집이나 도시의 잔해 같은 것들을 볼 수 있다 (…) 이보다 덜 끔찍한 지옥에는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 집안에는 무시무시한 영혼들이 끊임없이 싸움과 구타를 일삼고 있으며 (…) 거리에는 도둑과 강도들이 판을 치고 (…) 그런가 하면 온갖 종류의 오물과 배설물이 그득한, 혐오스러운 모양의 매춘굴만 즐비한 지옥들도 있다.
  

  이 외에 바싹 메마른 불모지나 축축한 동굴, 사나운 짐승들이 우글대는 밀림 같은 형태의 지옥들도 있다. 우리가 이곳에 가는 이유는 심판의 신이 내린 징벌 때문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본성과 이 세상에서 우리가 내린 선택들 때문이다. 요컨대 천국과 지옥은 자유의 긴장 속에서 흔들리는 인간 영혼의 두 지주와 같은 것이다. 저급한 세계에의 유혹이 없다면 우리 영혼의 성장에는 활기와 모험이 부족할 것이다. 스웨덴보르그는 자유 의지를 통해 스스로를 악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지 않는 한 인간에게 구원이란 없다고 생각했다.

현실에서의 경험은 영적인 실체와 상응한다

  어쨌든 지옥으로 떨어진 영혼들은 정말로 그곳을 즐긴다. 죽은 뒤 인간은 자신이 선택한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데,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영혼들은 우주의 근본적 합일을 산산이 조각내 버리는 자기중심주의를 통해 그런 길을 자초한다. 그의 이런 사상은 ‘큰 뜻을 따르는 자는 대인이 되고, 작은 뜻을 따르는 자는 소인이 된다’는 맹자의 말과도 통한다.
  
  스웨덴보르그라면 아마 맹자의 이 말을 다음과 같이 풀어썼을 것이다. ‘자기 의지를 초월하려는 내면의 부름을 따르는 자는 천국을 선택하겠지만, 자기 의지에 집착하는 자는 지옥을 선택한다. 지상에서 어떤 신분을 갖고 있었든, 지옥에서는 내면의 빈약한 실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스웨덴보르그는 종종 지옥에서 주교들과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스웨덴보르그의 지옥은 이처럼 매력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반면에 그의 천국은 상상할 수도 없이 충족된 상태를 보여준다. 하지만 천국과 천사들이 실체적이라는 그의 확언은 독자들을 양분시켰다. 고차원적인 세계가 완전히 ‘다른 세계’가 아니므로, 우리의 삶이 선과 진실을 향해 있다면 이 지상의 차원에서도 고차원적인 세계에 관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매력을 느끼는 독자들도 있었다. 반면에 어떤 독자들은 천사들의 집과 주차장, 의복, 식사, 성적인 관계 등에 대한 스웨덴보르그의 묘사가 지상의 것들을 약간 격상시켜서 그대로 천상의 배경 속에 옮겨놓은 것에 불과하다며 그의 영계 묘사가 허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의 실재(One Reality)가 인간적인 것이라는 바로 이 가르침 속에 그의 비전을 이해하는 열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의 인간성을 통해 신적인 것에 다가갈 수 있으며, 우리의 경험은 영적인 실체와 상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인 실체들이 결코 인간적 실체들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인간적인 것 어느 것도 영혼의 영역 밖으로 밀어버릴 수 없다. 지상에서의 우리 삶은 영적인 의미들을 반영하는 것이며, 저 편의 세계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우리 경험의 잠재력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사상은 우주를 위대한 인간(the Great Man)으로 본 그의 비전속에 잘 나타나 있다. 상응론이 이런 사상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인간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신적인 것이 인간적인 것이기 때문이며, 영적인 세계와 물질적인 세계 모두 이런 사실을 보여준다. 자연 현상들을 고찰하는 속에서 우리 존재의 여러 측면들을 인식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면 신적인 것의 증거를 발견할 수 있다. 스웨덴보르그에게 있어, 실재는 모든 것들의 핵심에 있는 신적인 인간성(the Divine Human)의 반영인 것이다.
  
하지만 천국의 환경이 지상과 아주 흡사하다 해도, 그곳의 조건은 지상과는 사뭇 다르다. 우선 시간과 공간이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다르다. 스웨덴보르그의 말에 따르면, 천국에서 시간은 하루나 주, 년 단위가 아닌 존재 상태의 변화를 단위로 계산한다고 한다. 시간의 진정한 본질은 직관에 의해 포착된다는 앙리 베르그송의 주장을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천국에서 우리는 만날 수 있으며, 신과 하나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천국의 공간 역시 지상과는 다르다. 천국에서 거리는 물리적인 위치가 아닌 감정적 이입의 정도로 측정한다. 때문에 천국에서 마음이 비슷한 영혼들은 그들의 위치가 어디든 서로 ‘가까이’ 있게 된다.

이 가르침의 핵심은, 진정한 실재란 우리 내면의 물리적 반영이 아닌 바로 우리의 내면 상태 속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물리적 우주에서 우리가 점유하고 있는 부분의 중심과 근원이 태양인 것처럼, 천국에서는 신성이 천상적인 온기와 빛 즉, 사랑과 진리의 중심과 근원이다. 때문에 천사들은 어느 쪽으로 가든 동쪽에서 언제나 신의 모습을 보며, 신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여러 권의 책을 통해 전달할 수 있는 내용을 단 한 마디로 표현할 정도로 천사들의 언어는 매우 압축적이고 의미심장하다.
  
사실 천국에도 세 가지가 있다. 천상적 천국(the celestial)과 영적인 천국(the spiritual), 자연적 천국(the natural)이 그것들인데, 신성과의 거리나 신의 진리와 사랑에 관여하는 정도가 저마다 다르다. 예컨대 천상적 천국은 말로 표현하기가 가장 어려운 곳으로, 신의 의지 혹은 감성에 직접적으로 관여한다. 반면에 영적인 천국은 그 관여 정도가 덜하지만, 신적인 깨달음 혹은 통찰에 전적으로 관여한다. 자연적 천국은 신적인 통찰에 관여하는 정도가 미약하며, 천국의 기준으로 볼 때 신적인 감성과도 아주 거리가 멀다.
  
이런 배열은 우리 정신적 삶의 구조와 대응된다. 예컨대 우리의 이성적인 의식은 자연적이며 물질적인 세계에 관여한다. 그러나 꿈이나 최면 상태에서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영역 밖으로 진입해, 영적인 세계의 본질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깊은 명상적 삼매에 들어간 상태에서는 하나의 실재와 그것의 본질(스웨덴보르그를 포함한 많은 은비가(隱秘家)들은 이를 사랑으로 본다)을 자각하게 된다.
  
천국에 대한 스웨덴보르그의 묘사는 너무도 상세하기 때문에 간략한 요약이 불가능하다. 상응론에 따라 그는 천국의 건축물에서부터 의복에 이르기까지 천사들이 사는 모습을 하나하나 그 영적인 의미와 연결 짓고 있다. 그 결과 힘차고 찬란하며 복합적인 세계의 모든 부분들은 무한정 서로를 반영한다. 요컨대 스웨덴보르그의 천국은 정적인 완벽함으로 정체되어 있는 곳이 아니라 신적인 감성의 맥박에 맞추어 무한히 전개되고 있는 곳이다. 그 이미지들은 우리들을 숨죽이게 한다. 스웨덴보르그의 말처럼, 천국 자체는 천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천사들은 다시 ‘진정한 성정’과 같은 덩어리에 속해 있고, 그 모든 덩어리들이 모여 위대한 인간의 몸을 형성한다.
  

‘다른 세계’의 가르침은 바로 이 세계에 대한 사랑

  스웨덴보르그의 천국은 단테의 비전들과 비슷하다. 그러나 천국에서의 삶의 본질을 스웨덴보르그는 ‘네가 아는 선을 행하라’는 소박한 금언으로 요약하고 있다. 그에게 선이란 결코 추상적인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설거지나 쓰레기 청소처럼 언제나 가까이 있는 문제인 것이다. 때문에 천국에서는 누구도 빈둥거리지 않으며 모든 천사들이 나름의 소임을 갖고 있다. 천국에서는 천사들로 이루어진 합창대나 기타 다른 곳에서 영원토록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을 강력하게 거부하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그런 삶은 결코 동적일 수 없다. 활동을 배제한 채 빈둥거리기만 하는 인생에 행복이란 없다. 때문에 천국에서는 모든 천사들이 각자의 ‘진정한 성정’에 맞는 할 일을 갖고 있다.
  
실제로 천국에서의 기쁨은 자신의 진정한 성정을 추구하며 다른 존재에게 유익한 존재가 되는 데에 있다. 반드시 쓸모가 있어야만 한다는 이 ‘준빅토리아적’인 개념은 천사들에 대한 스웨덴보르그의 가르침(천사들은 실제적 행위를 통해서 배운다는 기본적인 실존 윤리)과 연관이 있다. 천사들은 오로지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것만을 배우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행위를 독려하지 않고 그저 훈계만 하는 가르침은 그들에게 아무 쓸모가 없다. 천국에서 중요한 것은 외향적인 과시가 아니라 내면적인 실체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내면의 감성적 상태가 곧 모든 것이다.
  
  천국과 지옥을 여행한 뒤 이처럼 소박한 결론에 도달한다는 것이 다소 싱겁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스웨덴보르그의 가르침이 그를 만났던 영혼들에게 심오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또 다른 것을 암시한다. 스웨덴보르그가 비록 ‘다른 세계’를 여행했지만, 그의 중심적인 관심사는 언제나 현생에서의 삶의 방식이었다는 점이다. 때문에 블라바츠키나 루돌프 슈타이너 같은 후대의 영계 여행자들과는 달리, 스웨덴보르그의 가르침 속엔 부활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전통적인 기독교도들처럼, 스웨덴보르그 역시 지상에서의 삶은 유한한 것이며 진실로 중요한 것은 지상에서의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웨덴보르그는 스칸디나비아의 기독교 사상가인 키에르케고르처럼 자유의 그 끔찍한 책임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요컨대 스웨덴보르그의 비전은 본질적으로 이 세계는 물론 다른 어떤 세계에도 잘 들어맞는 아주 건강하고 풍요로운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신비로운 스웨덴의 영성가는 자신의 파란만장한 영혼의 여행을 통해
우리를 빛으로 휘감을 진정한 사랑의 거처 ‘천국과 지옥’을 목격했다.


관습적인 시각으로 볼 때 일상의 세계가 유일한 세계는 아니라는 생각은 공상적인 기이한 생각에 불과하다. 그래서인지 오감을 통해 인식하는 것이 실재(Reality)의 전부라는 물질주의적인 시각이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식의 이해가 자리잡은 건 근래의 일이다. 고대의 인류와 문화는 결코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을 수 있는 것들이 실재의 전부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그들은 물질계를 확신하듯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의 실재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고 있었다. 일례로 중세인들에게 있어 영적인 세계는 나무나 집의 존재처럼 아주 분명히 실제하는 것이었다. 물질계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며 물질계 너머의 세계에 인간의 영원한 운명이 놓여 있다는 종교적 가르침이 이처럼 영적인 세계의 실재를 더욱 확실하게 믿도록 만든 것 같다.
  

미지의 저 세상에 대한 정직한 안내자 스웨덴보르그

  오감을 통해 인식한 것이 실재의 전부라는 견해가 지난 수 세기 동안 우리의 문화를 지배해왔다. 하지만 그 한편에선 언제나 또 다른 세계의 실재를 인정하는 사상의 조류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이 두 가지 개념들이 흥미로운 변증법적 상호 작용에 들어섰다.
  
신경과학자들은 인간 정신의 신체적인 기반으로 추정되는 것에 천착하는 반면, 대중문화에선 그 어느 때보다도 광범위한 스케일로 또 다른 세계를 포용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영혼의 시장’엔 채널러와 물리학자, 신비주의자, 온갖 분야의 선지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들 중엔 물론 진실로 유익한 지혜를 설파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소 미심쩍은 가르침들을 이용해 이득을 챙기는 경우도 있다.
  
  소설『천국과 지옥(Heaven and Hell)』에서 올더스 헉슬리는 이렇게 쓰고 있다. “백년 전의 지구처럼, 우리의 내면엔 아직도 미지의 아프리카 대륙과 인적미답의 보르네오 섬, 아마존 습지 같은 곳들이 존재한다.” 또 다른 세계로의 이끌림과 함께 이 세계에 대한 탐구의 어려움을 토로한 대목이다. 미지의 영역에서는 길을 잃기 쉬우며, 어느 정도의 사전 지식이 없을 경우엔 그곳을 다녀왔다는 사람의 주장도 쉽게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타인들의 기묘한 이야기에 푹 빠져들어 확고하게 그것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 이야기의 진위여부를 밝힐 방법이 전혀 없는 경우에도 말이다. 하지만 진실로 현명한 방법은 역시 믿을 만한 안내자를 찾는 데에 있을 것이다.
  

두 세계의 장벽을 뚫어버린 놀라운 염력

  근대에서 다른 세계에 대한 가장 체계적이고도 일관된 안내자의 한 명으로 스웨덴의 선지적 철학자인 임마뉴엘 스웨덴보르그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그의 책을 논하면서 올더스 헉슬리가 스웨덴보르그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을 미심쩍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천국과 지옥』은 분명 영계를 다룬 서양의 정전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훌륭한 안내서이다.
  
심각한 영적 위기를 맞이했던 1745년, 57세의 스웨덴보르그는 이를 계기로 그 이전은 물론 이후까지 누구도 필적할 수 없는 훌륭한 영계 안내서를 만들어냈다. 귀족의 칭호를 받기 전까지 스웨드베르그(Swedberg)로 불렸던 임마뉴엘 스웨덴보르그는 1688년 1월 29일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1772년 3월 29일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다. 천사나 영혼들과의 대화를 기록하는 데에 스무 해도 넘는 세월을 바친 그는 자신의 죽음으로 이 세계와 저 세계간의 장벽을 뚫어버릴 수 있는 그의 능력을 확실하게 입증해 보였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달, 그는 영적인 세계를 통해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가 그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존 웨슬리 자신은 누구에게도 이런 소망을 고백한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광범위한 설교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 웨슬리는 스웨덴보르그로부터 편지를 한 통 받았다. ‘영적인 세계를 통해 당신이 나와 간절히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깜짝 놀란 웨슬리는 유감스럽지만 방문을 몇 달 뒤로 연기할 수밖에 없으며, 런던으로 돌아가는 길에 뵐 수 있으면 감사하겠다고 답신을 보냈다. 그러자 스웨덴보르그는 내달 29일이 되면 자신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므로 그건 불가능하다고 회답했다. 실제로 스웨덴보르그는 그가 예견한 바로 그 날,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자신의 죽음에 대한 스웨덴보르그의 예언은 그의 놀라운 염력을 입증해주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그의 생애를 다룬 책들을 보면 그의 이런 능력에 대한 기록들이 무수하게 실려 있으며, 그 자체로도 충분히 놀라운 일들이다. 그래서일까? 영계에 대한 그의 저작물들은 괴테나 윌리엄 블레이크, 헨리 제임스, 사뮤엘 테일러 코울리지, 오노레 드 발자크,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어거스트 스트린드베리 같은 주목할 만한 인물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뿐만 아니라 랄프 왈도 에머슨 같은 경우는 그를 일컬어 ‘평범한 학자들로서는 도저히 평가할 수 없는 문학의 거성’이라고까지 했고, 자기 나름의 색다른 방식으로 이미 보이지 않는 세계에 거주하고 있던 헬렌 켈러 같은 경우는 스웨덴보르그의 가르침들을 담은 그녀의 점자식 책들 속에 영적인 세계의 비밀들을 가득 채워 넣었다. 하지만 이들이 스웨덴 보르그에게서 이토록 엄청난 영향을 받은 것은 결코 그의 사소한 이적들(minor miracles) 때문은 아니었다.
  

실제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으로 그린 영계 지도

  그렇다면 이처럼 무수한 사람들에게 스웨덴보르그가 엄청난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 근본적인 이유는 그가 실제로 천국과 지옥을 가 보았으며 다시 돌아와 아주 세밀하게 두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데에 있다.
  
  하지만 스웨덴보르그는 내면의 세계가 아닌 외면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데에 생의 더 많은 시간을 할애 했다. 그의 학문적 열정은 그야말로 탐욕스러웠다. 덕택에 영적인 위기를 맞이할 즈음 그는 이미 야금학에서부터 두뇌해부에 이르기까지 온갖 영역에 걸쳐 엄청난 양의 글을 쓴 저자이자 정치가, 광산의 감독원으로서 스웨덴에서 대단한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게다가 대단한 수완가이기도 했다. 일례로 배 몇 척을 산 넘어 내륙으로 운반하는 일을 원래 일정보다 훨씬 앞당겨 완수하기도 했다.
  
  요컨대 스웨덴보르그는 결코 모호한 신비주의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실제적이고도 체계적인 접근법으로 영계의 지도를 그려냄으로써, 천국과 지옥에 대한 자신의 기록에 논리적인 일관성을 부여했다. 이는 덜 꼼꼼했던 다른 탐구자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미덕이다.
윌슨 반 뒤센의 말처럼, ‘내면으로의 여행은 습관적으로 무시하고 간과했던 것들을 설명하는 개인의 가치와 시각을 근본적으로 확장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스웨덴보르그는 당대의 과학과 철학에 두루 정통했지만 정작 자신의 내적인 삶, 즉 감성의 세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영적인 위기를 맞이하던 시기, 그의 가장 커다란 관심사는 인간의 두뇌 안에 있는 영혼의 자리, 당대의 신경 과학자들도 계속해서 찾고 있던 그 자리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결국엔 영혼에 대한 그의 과학적인 탐구에 가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영혼의 진정한 집, 인간 정신의 내적인 영역들로부터도 멀리 벗어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그가 『꿈일지(Journal of Dreams)』에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그를 이런 깨달음으로 인도한 것은 일련의 파편적인 비전들이었다. 한창 그런 비전들에 시달리기 시작할 즈음, 꿈에 예수가 나타나 스웨덴보르그에게 ‘건강 증명서’를 갖고 있냐고; 전염병을 옮긴다는 오해로 죽을 뻔했던 사건을 암시하는 것; 물었다. “주여, 저보다 주께서 더 잘 알고 계십니다.” 하고 그가 대답하자, 예수께서 다시 이렇게 물었다. “그래, 그렇다면 하거라.” 스웨덴보르그는 자신이 영적인 세계를 더 깊이 파고들게 되리라는 것으로 이 꿈의 의미를 해석했다.
  
  그 영적인 위기를 통해 스웨덴보르그는 자신의 내면을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영적인 세계에 더욱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근본적인 깨달음을 얻었다. 그 예로 『천국과 지옥』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보다 내적인 영역과 관계를 맺는 만큼 천국과 교류할 수 있다.’


ninano 2007-07-14 오전 06:19

"지옥은 신의 부재"라는 소설이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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