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 사진 요구 부대, 자체조사 후 '증거없다'
군, 입원치료 피해자에게 ‘체포영장 청구해 점거에 나서겠다’ 엄포도
김삼권 기자 quanny@jinbo.net
2006년03월23일
지난 달 15일 인권단체들의 폭로로 알려지게 된 모 부대의 동성애자 인권침해 사건(참세상 2월 15일자 기사 ‘성관계 사진 찍어 동성애자 사실 입증해라’)에 대해 해당부대가 ‘자체조사 결과 성관계 사진을 요구한 적 없다’며 사건 자체를 부정하고, 우울증 및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고 치료중인 피해자에 대해 ‘군사법원에 체포영장을 청구해 검거에 나서겠다’며 즉각적인 복귀를 종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또 다시 파문이 일고 있다.
공익변호사그룹‘공감’, 민주노동당,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한국성폭력상담소, 인권단체연석회의,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친구사이 등으로 구성된 ‘군대 내 동성애자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단(준)’(진상조사단)은 22일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간의 경과를 설명하고 향후 계획을 발표했다.
군, “성관계 사진 요구한 적 없고, 민간병원 진료결과 신뢰 못해”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자 박인호(가명) 군의 아버지 박동재(가명) 씨에 따르면 “아들의 인권침해 사건이 알려진 후 해당부대 사단장은 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10일 간의 휴가 연장 조치와 전역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부대는 휴가 마감일을 하루 앞둔 2월 24일 당초 입장을 바꿔 ’선 복귀 후 자체조사‘ 방침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전달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진정 사건이 조사 중이며 당사자 상황이 부대로 복귀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입장을 해당 부대 측에 전달하고, 다음날인 25일 인권위 조사관, 박인호 군, 해당 부대 관계자 등이 면담을 진행했다.
이날 면담 자리에서 해당 부대 사단장은 “부대에서 자체 조사를 한 결과 성관계 사진을 요구한 적이 없고, 박인호 군에 대한 민간병원에서의 진료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며 피해 당사자와 인권단체들의 문제제기를 전면 부인하고, 박인호 군의 신속한 부대 복귀를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피해자에게 ‘체포영장 청구해 점거에 나서겠다’ 엄포
한편, 지난 달 초 이미 용인정신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은 바 있던 박인호 군은 2월 27일 아주대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로부터 재검사와 상담을 받은 결과 ‘주요우울장애, 대인기피, 자·타해 위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의 진단을 받았다.
당시 진료를 담당했던 이영문 교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주요 우울증세가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으로 판단하며 자살사고 및 자살행위가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평가된다”며 “향후 장기간의 정신과 면담 및 약물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며 현재를 기준으로 병이 유발된 군대 내에서의 생활은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는 소견을 밝혔다.
이에 따라 진상조사단과 인권위는 입원치료가 필요한 피해자의 상황을 해당 부대에 알리고, 병가요청을 했다. 그러나 해당부대는 인권위에 ‘신병을 즉각 넘기고, 만약 불이행 시 군사법원에 체포영장을 청구해 점거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재차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몇 차례 휴가 연장조치를 받고, 3월 9일 박인호 군은 상급군병원으로 이송되어 현재 치료를 받고 있는 상태다.
피해자 아버지, “군, 잠시 반성하더니 돌변해 조직보호에만 몰두”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동재 씨는 이번 사건에 대한 참담한 심경을 밝혔다. 박동재 씨는 “인호는 늘 밝고, 유난히 사교성이 좋은 아릅다고 건강한 아이였다”며 “지난 2월 초 ‘모든 사람들이 나를 벌레 취급하며, 온갖 모욕과 질시를 당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죽음을 통해 평안을 찾겠다’는 인호의 전화를 받았을 때 비통했던 심정은 당해보지 않은 아버지라면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며 비통한 마음을 전했다.
그는 이어 “인호를 진료한 교수님들의 소견으로는 앞으로 오랜 치료를 받아야하며,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지 염려하고 있다”며 “말하자면, 전역이 문제가 아니라 ‘고문후유증’과 같이 군에서 받은 고통에 일생동안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라고 박인호 군의 상태를 전했다.
박동재 씨는 이어 “첫 기자회견 후 군은 잠시 반성하는 듯 보였으나, 즉시 돌변하여 조직보호에만 몰두하고 있다”며 “이는 앞으로도 유사한 사건이 재발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고 우려를 나타내며 군대 내 동성애자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을 촉구했다.
진상조사단, “은폐와 책임전가는 더 큰 저항을 부를 것”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서 진상조사단은 군 당국의 사건 은폐와 인권위의 소극적 대응을 강력 규탄했다. 진상조사단은 “군은 더 이상 모든 사실을 은폐하려해서는 안 된다”며 “그동안 존재해왔지만 침묵해왔던 동성애자 인권침해 사실들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는 지금, 은폐와 책임전가는 더 큰 저항을 부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이들은 군 당국에 △피해당사자에 대한 사과와 해명 △인권침해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 장애 인정과 이에 따른 조속한 전역조치 △피해당사자의 치료비용 전액 부담 등을 요구했다.
아울러 진상조사단은 인권단체들이 제기한 긴급구제조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인권위에 대해서도 “이번 사건은 사실 정황만을 따져 묻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진단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 국가인권종합기본계획(NAP) 권고안에서 밝혔듯이 군제도 상의 동성애자 차별조항이 본 사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앞으로의 대안은 무엇인지 등 거시적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진상조사단은 박인호 군에 대한 전역 조치를 위한 향후 대응 활동으로 △군대 내 동성애자 인권 침해 대응을 위한 투쟁기금 모금 △군대 내 동성애자 차별 신고센터 설치 △군대 내 동성애자 인권 침해 대응을 위한 토론회 등을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