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性 ‘동성애’ 현대미술 키워드로
[쿠키뉴스 2006-01-27 08:56]
[쿠키문화] ○…왕과 광대의 동성애를 다룬 영화 ‘왕의 남자’가 올 겨울 최고의 흥행작으로 떠오르며 ‘동성애’라는 화두가 문화계를 강타하고 있다. 한 휴대전화 광고는 레슬링 경기에 나선 두 남자를 통해 은연중에 동성애적인 코드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던 ‘퀴어(queer) 담론’이 적지않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미술만큼 퀴어 담론이 일찍이 보편화된 장르도 없는 듯하다. 동성애자의 성 행위를 캔버스에 옮긴 프랜시스 베이컨, 스스로 동성애자로 살아간 길버트와 조지, ‘꽃’이라는 대상을 통해 동성애자의 성적 정체성을 억압한 사회의 단면을 드러낸 로버트 메이플소프, 에이즈와 동성애에 대한 공포를 다룬 낸 골딘의 영상 작업 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우리 작가들 중에서도 퀴어 담론을 주제로 한 작가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레즈비언 프로젝트’, ‘히스패닉 프로젝트’ 등의 사진 작업을 통해 주류 사회에서 하위 문화로 치부되어온 다양한 문화의 ‘차이’를 짚어낸 재미작가 니키 리(이승희)와 서울의 게이바 90여 곳의 이름을 향가루에 불을 피워 소개하는 오인환의 ‘서울에서 남자가 남자를 만날 수 있는 90개의 장소’라는 제목의 작업은 대표적이다.
무엇보다도 미술에서의 퀴어 담론은 단순히 ‘몸’으로 상징되는 성(性) 정체성이라는 주제를 탈피해 주변부 문화와 다원주의, 그리고 소수자(마이너리티)를 향한 진한 애정을 보여준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몸을 매개로 한 성 정체성 작업이 성적 차이 또는 성적 차별에 대항하는 대항적인 정치문화를 확보하는 것이다. 단순히 동성애자를 의미하는 데 그치던 퀴어라는 단어가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 등 성적 소수자와 성 정체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문화적 코드로 자리 매김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한마디로 남성과 여성이라는 구도를 벗어난 ‘제3의 성(性)’이라는 새로운 구도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미술관 리움 개관 1주년을 맞이해 개인전을 가져 국내 관객에게도 친숙한 매튜 바니와 몬스터(괴물)와 사이보그 이미지로 잘 알려진 이불 등의 작업은 인간의 육체적 한계와 성(性)의 이분법적 구별을 극복하려는 ‘제3의 성’을 예술적으로 탐색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미술과 대중문화에 불어 닥친 퀴어 담론을 두고 비판적인 시각도 만만찮다. 미술평론가 고충환 씨는 ‘퀴어와 캠프, 위반의 정치학’이라는 자신의 글에서 “물신주의와 자본주의의 상품화 논리의 연장선”이야말로 퀴어 담론이 갖는 한계라고 지적하고 있다.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아 나선 자본주의의 또 다른 상품에 불과하다는 의미로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퀴어 담론을 통해 ‘정체성’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차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가고 있는 동시대 문화의 한 단면을 읽을 수 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국민일보 쿠키뉴스제휴사/광주일보 윤동희·미술전문기자 ceohee02@nate.com
퀴어담론이란 무엇인가
영어 ‘퀴어’는 기묘한, 이상한, 괴상한 등의 사전적인 의미를 갖는 단어. 현대미술을 비롯한 문화에서 퀴어는 그로테스크한, 왜곡된, 컬트적인, 비정상적인 미학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남성과 여성의 성적 차이를 의미하는 젠더(gender· 사회문화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성에 대한 인식)와 섹슈얼리티(sexuality· 생물학적 성 인식)이라는 개념을 오가는 작가들의 작업 흐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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