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시청자에게 엉터리 ‘성정체감’ 강의
[일다 2006-01-31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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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생방송 60분-부모> 프로그램의 1월 18일자와 25일자 방송을 보면서, 올바른 정보를 접할 통로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동성애가 뭔지 모르는 ‘전문가’
18일 방송된 “성정체감 바로 갖기-10대 딸을 둔 부모들께” 편에서는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에 대한 편견 및 고정관념을 부모부터 깨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시민들의 인터뷰와 함께 주로 김미라 박사(심리학)의 강의로 진행됐다.
방송을 보면서 그 동안 알고 있었던 사실들과 다른 부분들이 너무 많아 혼란스러웠다. 사회의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의 유래를 살펴보기 위해 서구의 역사 예를 들었는데, 일반인들도 쉽게 알고 있는 한국의 유교문화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역사와 현실대신 서양의 고대를 논하는 것도 의아했지만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이들 모두 “동성연애자”라고 지칭한 것부터 이상했다. 많은 사람들이 “동성연애자”라는 말을 ‘동성애자’의 잘못된 표현으로 인식하고 있는 요즘인데, 왜 저런 용어를 방송에서 사용했을까.
그런데 김 박사에 따르면 “동성애자”는 ‘심리적인 성정체감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며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남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동성연애자”는 심리적인 성정체감에는 문제가 없지만 옆에 두고 있는 사람이나 사랑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동성인 것이라고 했다. 처음 들어보는 규정이다. ‘동성애자’와 ‘동성연애자’ 그리고 ‘트랜스젠더’에 대한 기본적으로 인식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데서 비롯된 지칭이다.
청소년 동성애는 이성간 사랑연습?
이어 25일 방송된 “성정체감 바로 갖기-10대 아들을 둔 부모들께” 편에서도 심각한 문제들이 발견됐다. 먼저 아들의 자위행위에 대해 부모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칭찬할’ 일이라는 이야기에서, 자위행위와 성정체감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더구나 딸 편에서는 전혀 이야기되지 않았던 자위행위를 비롯한 성적인 문제들이 아들 편에서는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었는데, 방송에선 계속 사회가 변하고 있다고 했지만 여전히 여성을 남성과는 달리 무성적 존재로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이 방송이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에 대한 편견 및 고정관념을 반영하고 있다는 증거 아닌가.
흥미로운 부분은 ‘사춘기’ 청소년들의 동성애에 대한 것이었다. 거리를 걸을 때 팔짱을 끼고 가는 남자-남자, 여자-여자, 남자-여자 중에서 불편한 모습은 어느 것인가를 묻는 인터뷰에서 대부분 남자-남자인 경우로 답했다. 그 이유로는 ‘어색하고 이상하다, 꼴 보기 싫다, 남자끼리는 잘 안 그러니까, 남자는 어깨동무가 일반화되어 있고 변태나 게이 같다, 남녀가 더 아름다워 보이고 남자-남자 커플은 부조화스럽다’ 등으로 답했다.
이런 인터뷰는 동성애, 특히 남성들의 동성애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살펴보고자 한 의도였겠지만, 동성애에 대한 올바른 정보 없이 방송을 내보냈기 때문에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유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스스로의 동성애 성향에 대한 청소년 대상 설문조사에서 여자는 16.3% 남자는 6.5%로 나온 결과에 대해, 여자아나운서는 그렇다면 ‘딸들을 더 걱정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김미라 박사는 한술 더 떠서 동성애에 대해, ‘사춘기 시기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이성간의 사랑연습을 동성간에 하는 것’이라면서 ‘(동성애자로) 낙인 찍지 않으면 다 나중에 이성애로 옮아가며, 자라나는 과정 중에 하나’라고 말했다. 이렇게 동성애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고, 동성애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호모포비아 가치관을 가진 분이 ‘성정체감’에 대한 프로그램에서 전문가 자격으로 나와 발언을 하다니, EBS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려는가.
딸 편에 이어 아들 편을 마치면서 김 박사는 ‘큰 입보다 큰 귀를 가지라’고 부모들에게 조언을 했다. 하지만 방송을 보면서 필자가 내린 결론은 큰 입이나 큰 귀가 아니라 올바른 정보를 가지는 것, 그리고 그 통로가 진실로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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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이정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