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Otets I Syn / Father And Son, 2003)
오, 걸작!
말로만 듣던 러시아 거장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영화를 처음 보았다. 약간의 충격과 두통. 한 숏으로 영화를 찍거나 대략 5, 60컷으로 장편을 찍는다는 악명 때문에 약간 쫄긴 했는데, 첫 장면부터 제압되어서 어쩔 줄 몰라하고 말았다.
이 영화는 조금 컷이 잘게 나뉘어져 있는데 대략 셈으로 보면 500컷 이상은 될 듯. 숨 막힐 것 같은 크로즈업과 풀 샷의 정교한 리듬 때문에 오랜만에 손가락을 입에 넣고 집중한 것 같다. 이 영화는 모호하고 선명하지 않다. 한국에 이 영화에 대한 소개글이 거의 없어서 야후닷컴에 가서 대충 살펴보니 실용주의의 후예들답게 얼버무림 일색이다. 자신들의 인내심 부족과 아둔함은 탓하지 않고, 2003 칸 영화제에 이 영화가 소개된 이후 'Homoerotic', 요 한 단어로 이 영화의 불투명함을 대충 마름질하려는 속셈이 눈에 뻔하다.
물론 이 영화의 키워드 중 하나는 분명 '호모에로틱'. 꿈인지 실제인지 모를 첫 씬의 아버지와 아들의 근친상간 장면은 렌즈의 왜곡으로 심하게 뒤틀려 있지만 카라바지오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시각적 충격을 내장하고 있다. 또 영화 내내 40대의 근육질 아버지와 20대 초반의 아들은 반쯤 벌거벗은 채 나돌아다니며, 늘 그들은 씬 어느 곳에서 옷을 벗고 있거나 그들이 나누는 시선 속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잔뜩 포화되어 있다.
'어머니와 아들', 그리고 곧 만들어질 '두 형제와 자매'로 엮어진 삼부작 중 두 번째 영화인 '아버지와 아들'은 호모에로틱한 마술적 영상으로 무장한 채 아버지 신과 아들의 종교적인 관계를, 유럽에서 점차 멀어져 가는 러시아의 운명을, 또 독립을 앞두고 있는 아들과 몸이 아픈 아버지의 실제적 관계를 다층적인 의미구조로 복잡하게 엮어내고 있다.
이 영화를 마음대로 해석해도 좋다. 아버지와 아들이 고통스럽게 엮어내는 동성애 영화로, 자신의 품에서 떠나려는 인간을 보며 느끼는 아버지 신의 고통에 관한 종교적 영화로, 단순한 가족 이야기로 읽어도 영화의 의미는 어느 한쪽이 훼손되지 않으리라. 영화 오프닝 씬의 대화를 거꾸로 뒤집은 엔딩 씬의 대사는 감독이 이야기하려는 바를 함축한다. 아들이 먼저 묻는다. 야훼가 아담, 너는 어디 있느냐? 하고 물었던 것처럼,
"You... Where are you?"
"l'm not far away."
"And me... Am l there, too?
"No...... l'm alone."
외디푸스를 떠올리지 말 것. 소쿠로프는 초장부터 아예 프로이트의 외디푸스를 비웃듯, 그만의 독특한 해석의 만화경으로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그려낸다. 평생 외디푸스 컴플렉스에 시달렸던 카라바지오의 그림과 유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이 영화가 발산하는 고통은 훨씬 더 농염하고 시적이다. 단색 현상과 소프트 필터의 힘.
흠... 오랜만에 뒷머리 때리는 영화를 봤다. 난 이렇게 날 곤란하게 하거나 머리 뇌세포를 활성화시키거나, 아니면 내가 자주 하는 소시민의 하품을 일거에 퇴장시켜버릴 정도로 현실의 고통을 즉물화시키거나, 아니면 때때로 내가 너무 삶을 단조롭게 산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자책하게끔 한 비트의 울림만으로도 충분히 날 울리는 신파조의 영화들이 좋다. 이 영화는 날 곤혹스럽게 했다.
이 영화를 위한 또 하나의 키워드인 러시아의 멜랑꼴리, 차이코프스키.
Tchaikovsky | Nocturne No.4, Op.19 (cell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