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relle, 1982
미국식 캠프 문화의 파스빈더식 반영물인 '크렐Querelle'은 개인적 생각이긴 하지만 지금껏 나온 영화 중 가장 호모 에로티시즘이 집약된 걸작임에 분명합니다. 호모 에로티시즘을 거론할 때 여전히 거론할 수밖에 없는 장 쥬네의 인공왕국과 가장 근접한 이미지의 생산자. 토드 헤인즈와 견줄 바가 못 되지요. 데릭 저먼의 절망과는 사뭇 다른 색조의 절망감으로 번역되곤 합니다.
딴에는 노쇄한 낭만주의에 이미 오염될 대로 오염된 듯이 보이는 저지만, 아직도 가장 강렬한 성적 판타지를 자극해오는 이는 바로 장 쥬네입니다. 범죄와 에로티시즘의 불가역적 관계를 탐색한 이 더럽고 지저분한 반역자의 상상이야말로 충분히 저를 흥분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초기 시네마텍 저질 비디오로 처음 장 쥬네의 영화적 이미지가 토드 헤인즈의 '독'의 몇몇 장면으로 재현되는 순간에 느꼈던 환희는 가히 경이적이었지요. 또 파스빈더의 '크렐'을 전주영화제에서 보고 난 후 극장 앞에 멍하니 선 채 느꼈던 감회란. 하층민과 범죄자의 은밀한 세계에서 도둑질, 살인, 사기, 그 사이 단막극처럼 이루어지는 짧고 충격적인 섹스의 탐닉..... 심지어 장 쥬네는 범죄자의 입을 빌려 파트너의 거시기를 '나의 사랑스러운 광주리'라고 부를 정도였으니까요. 사르트르 말처럼 장 쥬네는 성과 속의 이분법을 손가락으로 튕겨내며 하층민의 저열한 도덕을 聖의 언어로 매혹적으로 재번역한 '성자'일 겝니다.
파스빈더는 쥬네의 언어를 빌려 선원 크렐Querelle을 mystical power라고 불렀지요. 옴므 파탈보다 더 퇴폐적이며 강렬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미국 게이 커뮤니티의 캠프 문화, 브레히트의 소격 효과, 연극식 연기, 강렬한 색조 조명 등의 총천연색 난리법석으로 고안된 파스빈더의 크렐은 호모 에로티시즘의 걸작.
Fox And His Friends, 1975
그에 반해 '폭스와 그의 친구들'은 리얼리즘 어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게이들간에도 계급의 차이가 엄연하지요. 사랑이 계급의 프레임으로 걸러질 때의 통증, 참 더럽고 가슴 아픈 삶의 이벤트. 어정쩡하게 두 손을 바지 포켓에 찔러넣은 채 구부정하게 걸어다니는 파스빈더의 이상한 연기만 봐도 속이 울렁거렸는데 이 영화에선 가슴이 무척 쓰렸던 기억. 왜 하필 그는 일상의 파시스트였을까요?
사적 삶에서는 파시스트였는데 좋은 영화만 찍으면 된다, 뭐 그런 쓰잘데 없는 소리는 영양가 제로인 것 같습니다. 고작 오십, 혹은 육십 평생이 기껏 삶의 헤프닝으로 그친다, 는 평소 신념 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요 답답한 요즈음에 경종이 필요한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