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에 쓴 글입니다. 선거철에 마음은 바쁜데, 몸은 하는 일이 없어서, 이 죄스러움을 어떻게 '반까이'할까 하다가, 제게 맡겨진 지면을 사유화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생까고' 노골적인 민주노동당 지지글 하나 썼습니다.
그래도 무거운 마음은, 죄책감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진보정당을 만드는 일, 제 스무살적 꿈입니다. 제 몸이 비록 말을 듣지 않았다 하더라도, 밥벌이에 하루하루가 소모되었다 하더라도, 그 꿈을 지난 15년 동안 잊고 산 적은 없습니다. 진보정당의 당원으로 늙어가는 일, 여전한 제 서른세살의 희망입니다. 그 꿈과 희망을 잘 담지는 못했지만, 어쨋든 다급한 마음으로 끄적였습니다. 이번주 <씨네21>에는 '어느 `노빠'의 열광'이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참, 게재글 보다 아주 약간 긴 원문입니다.
사실 나는 ‘노빠’다. 노무현 빠돌이? 설마. 말 많은 오빠는 딱 질색이다. 나는 노회찬 빠돌이다. 요즘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바짝 뜬 민주노동당 총선 선거대책본부장 노회찬 오빠 말이다. 이럴 수가. 유구한 내 빠돌이 인생에서 머리 빠진 오빠는 처음이다. 심지어 말도 많다. 그런데 입놀림 하나하나에 뻑간다. 용필 오빠 빠돌이를 하던 소녀 시절에도, 젝스키스 못잡아 먹어 안달이던 에초티 빠순이 시절에도 오빠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이렇게 자지러진 적은 없었다. 심지어 눈물까지 찔끔거리기는 궁상도 떤다.
고백컨대, 텔레비전 토론회 보는 사람들을 경멸해왔다. 절대 그런 지루한 인간들 하고는 연애 안 할 거다, 다짐할 필요조차 없었다. 당연히 안 할 거니까. <한밤의 TV연예>할 시간에 <100분 토론>을 보다니. 말이 되는가. 그랬던 내가, 토요일 저녁 채널을 돌리다 오빠에게 필이 꽂혀 버렸다.
그 운명의 순간은 이랬다. 4월3일 한국방송 <생방송 심야토론>에 나온 한나라당 의원이 정동영 의장의 노인 비하 발언을 물고 늘어지면서 노인복지를 거론하자, 노회찬 오빠 왈.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야기시킨 탄핵으로 우리 국민 평균 수명이 단축됐어요. 그거 어떻게 책임질 겁니까? 지금 노인문제를 토론할 때가 아니라 말이에요”. 아~싸, 촌철살인! 방청객 일동, 박장대소. 이어 국회 출석률이 무척 낮았던 자민련 의원에게는 “4년 동안 학교도 안 가고 안 보이시더만, 이제와 가지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꾸짖는다. 앗, 능숙한 애드리브! <한밤의 TV연예>의 에이스 조영구 뺨치는 실력이다.
이번엔 웃기다 울린다. 노 대통령과 4당 대표가 룸살롱에서 800만원 어치 술 먹은 것을 지적하며 “며칠 전에 월 70만원 생계비를 받는 소녀가장이 자살을 했어요. 2시간 동안 800만원 먹었으면요, 그건 1년치 생계비에요. 이런 핏발 선 투표용지가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침내 감동의 물결에 마침표를 찍는 마지막 정리 발언. “유권자 여러분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노회찬 오빠의 데뷔는 화려했다. 3월초 오빠가 토론회에 나오자 포털사이트에 ‘노회찬 어록’이 뜨고, 언론에 노회찬 신드롬이 몰아쳤다. 날렵한 빠돌이들은 ‘노회찬 국회보내기 운동본부’ 카페를 만들었다. 요즘 우리 노빠들은 요즘 오빠의 스케줄을 챙기고, 오빠의 동영상을 뿌리느라 여념이 없다. 알고 보니 오빠의 명성은 오래전부터 ‘언더그라운드’에서 자자했단다. 오빠는 30년 동안 거리의 정치연설로, 강당의 토론회로 단련된 ‘준비된’ 만담꾼이다. 하루 이틀에 급조된 스타가 아니란 말이다. 단지 밀어주는 당이 없어서 텔레비전에 못 나왔을 뿐. 그동안 오빠에게도 ‘안 좋은 추억’은 참 많다. 많은 언더그라운드 ‘동지’들이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금뱃지를 쫓아 떠났다. 대부분은 ‘DJ 기획’을 거쳐서 ‘원조 노빠 기획’으로 옮겨 갔다. 어떤 오빠들은 ‘딴나라 엔터테인먼트’로 막가기도 했다.
모든 빠순이의 목표가 연말 시상식에서 오빠의 품에 트로피를 안기는 것이듯, 우리 노빠의 목표도 오직 오빠의 가슴에 금뱃지를 달아주는 일이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우리 오빠가 10대 가수, 아니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0번 안에 들기는 했는데, 그 순번이 너무 늦다. 무려 8번. 오빠가 금뱃지를 달려면 민주노동당에 13% 이상의 지지율이 필요하다. 여차하면, 재주는 우리 오빠가 넘고, 국회의원은 다른 오빠가 하게 생겼다. 이건 에이스 빼고, 대표팀을 월드컵에 내보내는 꼴이다. 노회찬은 진보정당의 홍명보이고, 안정환이다. 오빠는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고 했다. 나는 “속 터지는 것을 두려워하자”고 호소한다. 앞으로 ‘테레비’에서 오빠를 자주 못 보면 속 터질 것 같다. 오빠가 금뱃지를 단다면? 꺄~악!
추신. <문화방송> 개표방송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있어요. 92년 총선이었죠. 전 밤새 개표방송을 봤어요. 물론 내가 응원하는 당은 추풍낙엽이었죠. 그런데 새벽 2~3시쯤 갑자기 강원도 춘천에 오렌지색이 칠해진 거에요. 전 너무나 놀랐죠. 제가 응원하는 민중당 색깔이었거든요.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였어요. 잠시 뒤 정정 방송이 나오고, 전 눈물을 흘렸죠. 텔레비전을 보고, “너 지금 나 놀리냐?”라며 화를 냈지만 소용 없었죠. 그로부터 8년 뒤. 역시 새벽 2~3시쯤이었어요. <문화방송> 아나운서가 울산 북구의 민주노동당 후보와 당선 인터뷰를 하고 있는 거예요. 눈물이 나오려고 했죠. 그러나 역사니였어요. 잠시 뒤 당선자가 바뀌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죠. 그 소식을 들은 나는 “이건 나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울부짖었지만, 텔레비전은 대답이 없었죠. 설마 저를 세 번 죽이지는 않겠죠? ㅋㅋㅋ
신윤동욱 <한겨레> 기자 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