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게이라 당당히 말할 수 있을 때까지"…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서울=뉴시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인 '친구사이' 회원들이 한국사회의 성소수자 차별을 은유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손대선기자 sds1105@newsis.com
【서울=뉴시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 서른명 남짓한 젊은이들이 집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행사를 마련한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이종헌(32) 인권팀장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International Day against of Homophobia and Transphobia, IDAHO)'을 기념한 집회라고 설명했다.
동성애자를 뜻하는 '게이'란 말이 '호모'보다는 차별성을 덜 띤다고 하지만 이성애자들에게는 여전히 이물스런 호칭이다.
주최측은 동성애의 정당성을 시민들에게 묻는 팻말을 행사장 주변에 세워놓았다. 거센 바람이 수시로 팻말을 쓰러뜨렸다. 주최측은 청테이프로 팻말 다리를 바닥에 고정시켰다. 바람은 그래도 팻말을 흔들어댔다.
오후 본집회에서 연사로 나선 진보신당 성정치기획단의 토리씨(활동명)는 2007년 법무부가 우리사회의 각종 차별을 시정키 위해 입법예고를 한 '차별금지법'의 후퇴를 아쉬워했다.
입법예고 당시만 해도 차별금지법안에서는 성별·장애·나이·출신지·인종·학력 그리고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를 포괄한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보수 기독교 단체들이 '동성애자차별금지법안저지의회선교연합'을 발족해 차별 범주에서 '성적 지향'을 삭제하면서 차별금지법은 되레 동성애자의 차별을 강조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토리씨는 당시 '성적 지향' 삭제를 주도한 이들을 겨냥해 "저들은 우리를 사회악이라 말한다"고 말했다.
연사로 나선 이들은 이같은 표면적 차별보다 잠재적 차별이 문제라고 말했다. 한 연사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려 하자 주변인들이 이같이 만류했다고 전했다.
"너의 성정체성을 인정하지만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으면 한다"
또다른 연사는 "동성에 문제를 밖으로 드러내면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우리 내부의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젊은 이성애자들에게는 IDAHO가 특별한 날이 아닌 모양이었다. 손에 손을 잡고 보신각 주변을 오고가는 이성애자들은 게이들의 캠페인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자살한 다음에야 게이란 게 알려진 장국영이나 섹시스타 메간 폭스의 동성애 고백은 '판타지'지만 이날 집회는 낯설기만 하다고 말했다.
반면 노인들은 동성애 문제를 한결 관대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선전 팻말에 담긴 글귀를 유심히 살펴보는 것도 노인들의 몫이었다.
김상구(64·강동구) 할아버지는 집회 중간부터 게이들의 목소리를 유심히 바라봤다.
김 할아버지는 "나 자신은 게이, 레즈비언이 불쾌하고 혐오스럽다"면서도 "그러나 나쁜 것이라고 기성세대 생각 안에서만 보는 것은 잘못됐다. 물론 정답은 아리송하다. 세상은 변한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동성애를 인정을 해야한다는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이종헌 인권팀장은 "동성애 존재가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은 우리 사회가 권리적인 측면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며 "비가시적 존재인 게이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우리사회가 내재적으로 갖고 있는 차별을 시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출산 문제의 심화를 이유로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보수 기독계를 향해 한 활동가는 행사 말미 이렇게 말했다.
"불임 남성과 여성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하는 것이 얼마나 부도덕한지를 생각해 보라."
손대선기자 sds1105@newsis.com
http://www.newsis.com/article/view.htm?cID=&ar_id=NISX20090517_0002200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