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나의 필름포커스]푸치니 초급과정
그녀는 레즈비언이 아니라 양성애자였다
성 정체성을 가로지르며 유쾌하게 펼쳐지는 로맨틱 코미디다. 달콤하게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 난감하게 꼬여 버리거나 열정이 시들어가고, 그러다 보면 불현듯 닥치는 이별의 순간. 이런 연애의 진행 과정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지만 그 속에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인간관계를 배우는 것이 연애의 소득일 것이다. 바로 그런 연애의 비의가 오페라 구조를 닮은 3막 구성 속에 녹아 있다.
영화는 레즈비언 작가인 알레그라(엘리자베스 리저)가 애인과 결별하는 극적 순간에서 시작된다. 이후 알레그라가 남자와 여자를 동시에 사귀는 양성애 연애담으로 급진전된다. 레즈비언이면서도 남자 철학교수 필립(저스틴 커크)을 사귀는 자신의 이중성을 두고 그녀는 ‘그저 가벼운 연애일 뿐’이라고 자기 최면을 걸지만 혼란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알레그라가 한눈에 반한 그레이스(그레첸 몰)는 이별의 상처로 인한 아픔을 위로받기 위해 알레그라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온다.
레즈비언에서 양성애자로의 변신과 양다리에 걸친 연애가 이중으로 꼬이는 데다 필립과 그레이스가 연인이었던 점이 폭로되면서 알레그라는 진퇴양난에 처한다. 양성애적 삼각관계라는 우연의 일치가 드라마의 개연성을 방해하지만, 그런 결함을 캐릭터의 매력으로 돌파해 나간다. 일부일처제적인 안착을 거부하는 알레그라의 용감한 철학이 담긴 내면고백과 재치 있는 대사가 난처한 상황을 진전시킨다. ‘섹스 앤드 시티’를 능가하는 솔직담백한 수다 파티, 오페라를 같이 보면서 각자 다른 생각을 하지만 정작 위기에 빠진 친구를 구해주는 친구들의 다채로운 면모가 흥미롭게 더해진다. 특히 이 작품이 보여주는 여자들 사이의 의리는 자매애가 실종된 여타 영화들에 비해 돋보인다. 영화보기의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연애심리와 억압된 욕망을 유머러스한 수다로 정신분석하듯 풀어내는 것이나 뉴욕 지식인의 삶이란 점 등 여러 가지 면모에서 우디 앨런의 코미디를 연상시킨다. 다만 자기애적 냉소를 넘어 인간미 깃든 따뜻한 유머가 녹아들어 있는 점에서 관객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올 것 같다. 성 정치학적 문제를 건드리며 심각해지기 마련인 동성애나 양성애 문제도 변화무쌍한 인간의 욕망을 대변하는 입담으로 경쾌하게 돌파해 나가는 매겐티 감독의 솜씨가 유연하다. 지성과 재기, 솔직담백함으로 무장한 매력적인 알레그라역을 생생하게 소화해내는 엘리자베스 리저의 연기력이 드라마를 더욱 감칠맛 나게 만든다. 철학과 여운이 깃든 품격있는 로맨틱 코미디의 정수 ‘비포 선라이즈’의 기획과 제작을 맡았던 존 슬로스의 솜씨가 이 영화에서도 빛을 발했다.
동국대 교수
2007.09.06 (목)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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