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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소식지31호]그 남자의 사생활 – ‘멘붕탈출기’
기간 1월 

그 남자의 사생활 – ‘멘붕탈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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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연말, 정권교체의 꿈은 산산하게 부서졌고 지구 멸망의 예언도 실현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멘탈 붕괴다. 현대인의 멘탈이 유리멘탈인건 내 주위를 둘러보면 쉽게 알 수 있다. 49의 소수자가 되어버린 나를 비롯한 내 주위의 사람들은 산산하게 부서진 멘탈의 조각들을 열심히 하나하나 주워 담아야만 했다.

 

49의 소수자 

나는 선거 민주주의 사회에서 투표가 대중들에게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맘껏 누리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생각인 것 같기도 하다. 51과 49의 싸움에서, 절대적 지지를 받지 못한 49는 ‘49’의 질적 소수자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다. 투표는 가장 민주적인 거 같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누가 49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선 당일인 19일 오후 6시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기 전까지, 75%의 이례적인 투표율이 보여주는 대중들의 폭발적인 관심은 어느 쪽에 유리할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던 것처럼 말이다. 당선자의 윤곽이 가려질 때쯤 술잔을 기울이던 대학가 앞의 한 술집은 각자의 탄식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나는 학우들과 미리 예약까지 해가며 이 날의 쾌감을 같이 누릴 기대에 부풀었다. 학교 앞 모 호프집에서 상대적으로 야권의 지지세가 높았던 우리 젊은 세대는 75%의 투표율이 정권교체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심지어‘100만표 차이로 이길 것이다.’라며 술값 내기를 하는 지금 보면 다소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당시 박근혜 후보가 이길 것이라고 예상한 친구가 아무도 없어서 결국 술값은 1/N 했지만 말이다. 유일하게 환호의 탄성을 뱉었던 호프집 주인아주머니는 우리들의 마음도 모른 채 학생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고 학생들은 울분의 술잔을 들이켜야만 했다.

 

2009년으로부터의 기억

 내가 대학교 신입생이 되었던 2009년, 성인이 되어 내가 처음 마주한 세상의 모습은 약자에게 관용 없는 세상이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갈 곳 없는 철거민들이 무자비한 국가권력 앞에 힘없이 쓰러져가는 것을 나는 목도했다. 또한 거대자본 앞에선 이 땅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력을 이용하던 자본으로부터도 버림받는다. 가진자들의 법치주의와 자본주의 앞에서 약자들이 설 자리는 더 이상 없었다. 나라고 다를까. 나 같은 성소수자들이 느끼는 정서도 여러 사회적 약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비단 지난 5년 동안의 정권 탓일 뿐만은 아니지만 이 체제 안에서도 정권교체라는 최소한 변화라도 나는 희망으로서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회의 한 시민으로서 바라본 대선 과정이나 결과를 설명하는데 여러 정치적 수사를 다 떼고 내가 받아들이는 결과는 최소한의 정의도 없는 사회 그 자체일 수밖에 없었다.

 

 현대정치를 이끄는 거대 헤게모니의 중심은 다각의 개인 정체성의 갈래로 연결되어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세상에 눈 뜨는 순간부터 투표권을 가지는 성인이 되기까지 습득할 수 있는 정치적 정체성이 개인들에게 더 강력하게 작용한다. 이는 해방이후 지난 60여 년간 드라마틱하게 전개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의 아픈 기억에 밀접하게 근거한다. 뚜렷한 성찰을 위한 노력이 없다면 그저 남이 만들어 놓은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쉬운 사회가 바로 우리나라 사회이다. 표현과 상상의 자유가 엄격하게 통제되어 온 사회와 교육을 통해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끊임없는 자기검열과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이기적이고 보수적인 사회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탈 구조화 된 깨어있는 시민(깨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이 간절해지는 순간이 이렇게 때때로 나에게 찾아왔다.

 

사랑해야 한다.

대선 이후 대중가요 노래 가사처럼 우선 난 TV를 껐다. 기성 언론에 대한 신뢰는 이미 예전부터 없었지만, 미디어에서 쏟아 낼 사실보도 조차 그 양적인 측면에서 받아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또 SNS 상에서는 평소 보수적인 뉘앙스를 풍기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었다. 조금 유별나 보일 수도 있지만 일련의 정치적인 결과들을 바라보며, 흐릿한 대상을 향한 증오심 따위가 내 안에 모락모락 자라나고 있었다. 또 다른 내 안의 이기심을 낳기 전에 이렇게밖에 치러질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구조의 문제로 프레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었다. 분명 내 멘붕으로 인한 소외는 내 정치적 고립을 낳는 것 밖에 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상대적인 모든 인간관계에서 이렇게 상대방을 나로부터 소외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나도 누군가로부터 소외된다는 의미를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파티장에서 사실은 모두들 자신과 이야기 나눠 줄 애타게 서로의 존재를 갈구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사랑해야 한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아직 철이 덜 들어 너무 낭만적인 이야기만 늘어놓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를 뒤엎는 혁명일지라도 인간에 대한 기본 사랑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 책에서 읽었다. 최근 관람한 영화 '레미제라블'도 같은 맥락으로 바라 보게  되었다. 진정한 변화는 현대사회에서 진행되는 인간의 자기소외를 극복하고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을 달성하기 위한 규제적 이념, 즉 그것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이다. 서로를 질시하고 소외하게끔 하는 이 사회를 극복하는 틀 속에서의 사랑을 다시 찾아내는 일이야 말로 우리의 멘탈을 근본적으로 지켜내는 강력한 힘이라는 선명한 희망의 메시지를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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