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리 큰 대중적 관심을 받지는 못했지만, 지난 5월 법무부 인권국이 출범하였습니다. 인권과로 존재하던 것을 개편에 새롭게 시작한 것이지요. 인권국은 정부의 인권 정책을 총괄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또 국가로부터 받은 차별을 구제할 수 있는 수단도 갖추고 있습니다. 인권과 관련해서 상대적으로 중요한 조직이 탄생한 것입니다.
법무부 인권국은 그 성격상 인권국장도 개방하여 공모제로 뽑았습니다. 변호사 자격을 갖춘 서기관 등으로 뽑고, 중요 부서인 인권정책과장도 외부에서 채용하도록 제도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마땅한 지원자나 적임자가 없어 난항을 겪었다고 합니다. 초대 인권국장도 8월에야 임용되었지요. 인권을 정책적으로 다룰 인력 풀이 그리 크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고 법무부 인권국이 가질 실질적인 효력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라도 국가적으로 인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전담하는 기구가 확장되는 것은 반길 만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계도 명확하지요. 검찰청의 상급 기관으로서 군사 정권 시절 고문을 부추기거나 방조하고, 대표적인 인권 침해 법률을 국가보안법을 수호하고 있으며, 지금도 인권활동가들에게까지 구속의 칼날을 휘두르는 법무부 안에 생긴 것은 태생적인 한계가 될 것입니다.
2.
그런데 법무부 인권국이 출범하면서 보수 언론들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을 깎아내리고 있습니다. 법무부 인권국이 생겼으니 이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할 일은 없다는 방식으로 말을 하고 있지요. 얼마 전 조영황 국가인권위원장이 사퇴하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국가인권위원회를 공격하고 나섰지요. [“인권위 이제 문 닫을 때 됐다”(조선일보 9월 27일자), “이런 인권위 필요한가”(중앙일보 같은 일자), “‘자중지란’ 인권위, 있어야 하나”(헤럴드경제 같은 일자)] 법무부 인권국과 종합적인 인권 업무를 수행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성격과 역할이 다른데도 인권위의 무용성을 주장할 수 있는 커다란 근거가 되는 양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강제조사권도 없고 권고 조치 정도밖에는 할 수 없는 인권위보다 집행력을 갖춘 법무부 인권국이 더 구제력이 커 보일지도 모릅니다. 인권위가 그것들을 가지지 못한 것은 저들이 결코 줄 수 없다고 소리 높여 외친 결과인데도 말입니다. 인권위가 한계와 문제점을 분명 가지고 있지만, 인권위의 활동과 독립 기구로서의 그 위치를 보았을 때 썩 좋은 상황은 아닙니다. 관계의 동학에서 보자면 법무부 인권국의 존재를 환영할 수만도 없는 것입니다. 물론 앞으로 법무부 인권국의 활동의 따라 이른바 ‘보수 세력’들은 인권위와 인권국을 함께 공격할지도 모릅니다. 그들에게는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이 ‘인권’이니까요.
3.
지금 법무부 인권국을 주목하는 보다 큰 이유는, 현재 인권국의 가장 중요한 일이 올해 연말까지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tional Action Plan for the Promotion and Protection of Human Rights. 이하 NAP)을 수립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NAP는 199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세계인권회의에서 각국에 수립을 권고한 것입니다.(이 회의는 각 국가에게 국가적인 인권 기구 설치 역시도 권고하였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에 기반이 된 회의이기도 한 것이지요.) 한국에서는 2003년에 국가인권위에서 권고안을 작성하고 이것을 기반으로 정부가 기본계획을 세우기로 해서, 3년간의 준비 끝에 지난 1월에 발표하였습니다. 이 권고안을 바탕으로 법무부 인권국은 각 부처의 의견을 조정하여 최종 NAP를 수립하게 됩니다.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결정되면 정부가 이를 유엔에 보고하고 2007년부터 5년 동안 단계적으로 시행해 나가게 됩니다.
NAP 권고안은 성적 소수자를 포함하여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열한 부문의 “사회적 약자 ․ 소수자의 인권 보호”와 시민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권리 및 인권교육 등을 다룬 “인권증진을 위한 인프라 구축” 부분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4.
우리가 특히 관심을 기울이는 성적 소수자 부분에서는, 성적 소수자의 생존권, 안전권, 노동권, 편견과 차별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보장,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내포하고 있는 군형법 등 관련 법령 폐지 내지 개정, 강간의 객체를 “부녀자”로 한정하고 행위를 좁게 해석한 형법 개정, 성적 소수자 관련 인권 교육 실시, 성전환 관련 수술에 대한 국민건강보험의 단계적 적용 검토 등 반드시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지요.
그러나 이런 사항들이 얼마만큼 NAP로 확정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인권의 시각에서 당연히 들어가야 할 내용들이 망라된, 오히려 미흡하기도 한 NAP 권고안을 지배 세력들이 일제히 매도하면서 공격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관련 정부 부처도 핵심적인 내용에 거부 의사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성적 소수자 관련 내용에서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의 유명한 대사처럼 “무엇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살고 싶은” 성전환자들의 시술에 대해 의료보험을 적용하는 것을 ‘심지어’라는 표현을 써 가면서 아니된다를 외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이미 1985년부터 혜택을 제공한 것인데도요. 지난 4월에는 해프닝도 벌어졌습니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이 NAP 권고안을 검토하여 군대 내 ‘동성애 행위’를 처벌하는 법령을 폐지하겠다고 발언했다가 대대적인 공격을 받고 “실무자의 실수”라면서 즉각적으로 발뺌을 한 것이지요.
5.
NAP에 대해 색깔론을 들이밀고, 이성애 중심적이고 사회적 성역할 관념에 갇혀 무조건 반대를 외치는 언론과 정부 부처들 속에서 NAP가 허울뿐인 계획으로 수립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큽니다. 앞서 말한 한계를 안고 있는 인권국이 얼마나 제대로 NAP를 구체화할지에 대해서 의구심도 큰 것 역시 사실입니다. 국가의 행위에 대한 벽이 우리가 개입하기에 매우 높고 단단하며, 한 인권운동가의 말대로 “인권이란 자신의 존재에 위협을 느끼지 않는 지배권력이 우리에게 가지고 놀도록 허용해 주는 장난감에 지나지 않은 것이고, 우리는 그 장남감을 가지고 허용 범위 내에서 열심히 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서준식, “부평은 인권을 믿지 않는다”, <한겨레> 2001년 3월 16일자]는 것 역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법무부 인권국이 NAP 권고안의 기본적인 내용들을 수용하여 NAP를 수립하도록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우리의 당연한 요구이며 이것은 그야말로 기초적인 문제들일 뿐임을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성적 소수자를 벽장 속에 가두는 현실에서 이러한 제도적 개선은 일부분일 뿐입니다. 그러한 개선 역시 우리는 계속해서 만들어내려고 하는 것이고요. 놓치지 않는 시선과, 잦아들지 않는 목소리, 걷어붙인 팔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밀
내년 공연도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