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정의 파리통신]나는 레즈비언 대통령을 원한다
지난 주말, 파리 레알 지구에 있는 이노상트 분수대 옆에 일군의 예술가,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모였다. 열흘 앞으로 다가온 프랑스 대선. 그러나 ‘부자들의 대통령’이라는 닉네임의 사르코지와, 우유부단한 이미지의 사회당 대선주자 올랑드라는 탐탁지 않은 선택지 앞에서 선거정국은 희망으로 들썩이기보다, 잘못 끼워진 단추인지 알면서 계속 끼워가야 하는 쓴맛에 질척인다. 이날 분수대 옆에 차분히 모여든 이 여인들은 바로 지겹도록 보수적이고, 신자유주의적 야망의 이빨을 숨기지 않는, 엇비슷한 놈들끼리의 잔치에 와락 찬물을 끼얹는다. 조에 레오나르드(Zoe Leonard)가 쓴 격렬한 텍스트를 대중 앞에서 함께 낭송하면서.
“나는 레즈비언 대통령을 원한다. 나는 그가 에이즈에 걸렸고, 국무총리는 의료보험도 안 되는 동성애자이며, 백혈병을 피할 수 없는 오염된 쓰레기들이 바닥에 뒹구는 어딘가에서 자란 인간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 나라 대통령이 16살 때 낙태를 했으며, 마지막 애인은 에이즈로 죽었고, 눈을 감으면 자기 품에서 죽어간 애인의 모습이 늘 떠오르는 그런 여자였으면 좋겠다. 나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 냉난방이 안 되는 집에서 살았고, 병원에 가기 위해, 가족생활보조연금을 타기 위해, 고용안정센터에서 구직을 하기 위해 줄을 섰던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실업자였고, 해고당했었고, 성적으로 학대당한 적이 있으며,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쫓겨난 적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가 어느 후미진 골목에서 밤을 새운 적이 있고, 강간에서 살아남은 자였으면 좋겠다. 누군가와 지독한 사랑에 빠졌었고, 상처 입었으며, 많은 실수를 저질렀으나 거기서 교훈을 얻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 나라 대통령이 흑인 여자이면 좋겠다. 그가 썩은 이빨들을 가졌으면 좋겠고, 병원에서 나오는 맛없는 식사를 먹어본 사람이면 좋겠다. 그가 마약을 경험해 보았고, 시민 불복종을 실천해 본 사람이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왜 내가 요구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지 알고 싶다. 왜 사람들은 우리로 하여금 대통령은 언제나 꼭두각시이며, 창녀의 고객이며, 결코 창녀 자신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믿게 한 건지 알고 싶다. 왜 그는 항상 사장이며 결코 노동자일 수는 없는 건지, 왜 그는 언제나 거짓말쟁이며, 언제나 도둑이고, 결코 처벌되지는 않는 건지 알고 싶다.”
2010년, 처음으로 스웨덴 의회에 극우정당이 진출하게 되었을 때, 스웨덴 여성 예술가들은 우경화되어가는 정치계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조에 레오나르드의 이 글을 대중 앞에서 함께 낭독하는 시위를 처음 시도했고 이후 이러한 운동은 핀란드, 에스토니아, 덴마크, 스페인 등으로 확산되어 오늘, 프랑스에 상륙하게 된 것.
우린 언젠가부터 민주주의의 꽃이라 하는 선거를 우리 중에 가장 잘 나가는(!!) 인물을 뽑는 인기투표로 여기게 되었다. 가장 돈을 잘 벌고, 가장 부모 백이 든든하며, 가장 번득이는 학력을 가졌고, 가장 높은 곳까지 단시간에 올라간 누군가를 마치 우리의 거울인 양 뽑아서, 그의 영광의 생애에 화룡정점을 찍는 데 가세하는 게, 그것이 투표였던가? 우리가 실행하고자 하는 간접 민주주의란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민의를 가장 잘 대변해 줄 사람을 고르는 게 아니던가. 출구가 보이지 않는 막막한 고난의 긴 터널을 걷고, 쓰디쓴 소외와 굴욕을 겪어본 사람이 우리의 뜻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지 않을까. 마사지걸을 잘 고르는 지혜를 만인 앞에서 설파하는 자가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면, 그에게 마사지를 해준 아가씨가 대통령이 되는 것도 가능한 사회여야 한다는 사실. 그럴 때, 우린 감히 민주주의를 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 왜 우린 진작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가.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4102111115&code=99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