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보이

title_Marine
회장 브리핑이 연기되었다.
아마도 일본에 출장다녀온 팀들의 벤치마킹 사례분석 보고가 주효했으리라.
분명히 일량은 더욱 들어나겠지만, 일단은 목요일날의 브리핑이
한주 연기됨으로서 언발에 오줌누기 격이겠지만, 몇달만에 월차를
쓸수 있을 것 같다.
턴키사업으로 몇달간 쉬지도 못하고 일해온 날들...
다시 복귀한 팀도 폭탄을 맞은 듯 여기저기 찢어져서 파견에 해외출장에
세개의 프로젝트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니 여전히 쉬지도 못하고
바쁜 일정은 계속되고....

부모님이 후포에 다녀오셔서 대게를 사오셔서 누나편에 올려보낸 것이
벌써 한달은 넘었던 것 같다.
이래저래 바쁜 일정으로 벌써 몇번째 누나부부의 초대를 미뤄왔던가.
몇달만에 처음으로 해를 보면서 퇴근해서 누나네서 저녁 식사를 했다.
잠자리가 설면 잠을 못자는 성격상 밥을 먹고 집에 도착하니 10시반...

그저께도 2시반까지 일을 한 탓에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지만, 오랫만에 생긴
나만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진 않다.
종로에 게이바에라도 가볼까?
혼자서 바에 앉아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니 왠지 처량하고 불쌍해보인다.
그런 곳에 나가서 앉아있어봤자, 원나잇도 못하는 주제에...

다운 받아놓은 데이빗 린치의 "Wild at Heart"나 볼까? 하고 맥주를 사러 나간다.
그리고는 몇번 메일을 주고 받았던 남자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본다.
사당에 산다는 그는 1시에 대학로 KFC앞에서 만나잖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까?
막상 만나본 이는 생각했던 느낌과 많이 달랐다.
술을 한잔하고, 보내고 잠이 들어서 일어나 보니 12시...

오늘 하루는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나 자신을 위해 쉬기만 하는 시간을
보내리라.
일어나서는 샤워를 하고, 아침겸 점심을 대충 먹은 후,
지난 한달간 잡았다 놓았다, 결국은 반밖에 못읽은 "매트릭스로 철학하기"를
읽기 시작하지만, 그동안의 피로의 누적인지 1시간도 못 돼서, 또 스르륵 잠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어느덧 일어나보니 시간은 8시...그래도 밥은 먹어야지...하고서는 밥을 하고,
생선도 굽고, 나물이 먹고 싶었지만, 오늘은 집안에서만 뭉개자는 신념하에,
김치와 북어국으로 만족을 하고는 후식으로 수박까지 먹고 나니
하루가 이렇게 빨리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렇게나 덧없이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있구나 하는 생각 역시 든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 야근안할까? 늘 야근에, 휴일 출근에, 아직 해야할 일도
많이 남아있고, 공부도 더 하고 싶기도 하고, 아예 다른 분야를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는 내가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을 바라는 것은
너무도 이기적인 생각일까?
아니면 얼마전에 지인과 나누었던 대화처럼, 그런 것은 생각하지 말고,
마음가는 대로 살다보면 인생의 진로를 변경할 수도 있고, 혹은 다른 누군가를
만나게 되기도 하는 것일까?

연초에 준비를 다 해두면 왠지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에 사놓은 젤은 유효기간이 지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고,
그냥 버리느니 딸딸이 칠 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에이즈 예방 캠페인 할때 챙겨놓은 콘돔도 같은 용도로 쓰이지 않을까?
이미 몇번 사용해봤는데 휴지로 닦을 필요도, 샤워를 다시 할 필요도 없어서
매우 편리하다.

하루를 다 보내버린 이 시점에서 오늘 하루 흘려보낸 시간들이 왜 이렇게
아깝게 느껴지는 것인지...
쇼핑을 할수도, 서점이나 레코드 가게에 갈 수도, 친구를 만날 수도 있었을텐데...
하지만 시간이 아깝기는 하지만, 하루 종일 이렇게 아무것도 안하고,
아무 신경도 안 쓰고. 쉴 수 있었기에, 앞으로 또 몇달은 열심히 일을 할 수도
있겠지 위안을 삼아본다.

황무지 2004-07-02 오전 04:31

턴키 사업(?)을 하는 회사에 다니는 거였군...
아직도 밤샘 야근을 하는 회사가 있긴 한가 보네.. 턴키쪽.. 많이 죽은 걸로 알고 있었는 데 말야..

시간 났을 때 데이트라도 하지 그랬어~!!
집에서 빈둥 거리는 것도 좋지만.. 남들처럼 영화도 보러 다니고 쇼핑도 하러 다니고..
그래야 인간 답게 사는 거야~~~ ^^;;;

또 바빠지면 얼굴도 못보겠군~
아류 얼굴 못 본지 꽤 오래 된 것 같아서.. 얼굴 잊어 버렸음!!!
(기억해 주길 원하지도 않겠지만 말이지만. ^^;;;)

한군 2004-07-03 오전 05:50

나른한 오후의 독서 같은 글이네요..건강 챙기시면서 일 하세요.
마음연결
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