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_보이스

title_Chorus
박재경 2014-10-10 21:56:52
+3 156

 어찌어찌해서 한 직장에 6년 여를 근무하다보니 내가 직장동료들을  바라보는 감정은 다양하다.

무척 친한 사람,  대면대면 하는 사람, 적극적으로 싫어하거나, 어떤 이들과는 기 싸움이 여전히 진행중이다.


우과장과 술 자리를 하던 중 모  과장님을 초대를 하면 어떨까? 갑자기 생각이 튀어나왔다.

" 그래 재밌겠는데"

" 모 과장님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거 같아"

" 맞아 ...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실 초대하려는 그 과장님은 나와는 개인적으로 친밀한 사이가 아니다.

나보다는 후임으로 들어왔고 부임하자마자 서로 오해를 하게 만드는 사건이 있었다.

평소에는 착한척 하지만, 싸움의 구도가 만들어지면 냉철하게 대응하는 나의 모습에

사실 사람들은 놀랬을거다.

생각 속에서만 있었던 일을 아주 조직적으로 실천을 해서, 다들 뜨악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 덕에 어부지리를 얻은 사람도 있었다.


화해의 술 자리를 갖은 후로 2년째, 여전히 우리는 서먹서먹하다.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다만 서로의 존재에 대해서 예민하게 바라보고 있는 거 같다.


스승의 날 선물받은(쑥스럽네 ^^) 화분을 일주일중 며칠은 본관 검사실 창가에 둔다.

내가 일하는 신관은 지하에 검사실이 있어서 햇빛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화분에게 "나의 잭" 이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다.

여직원들은  화분에게 이름을 붙여준 내가 신기한지 연신 깔깔댄다.


며칠 후 내 화분 옆에 다른 화분이 놓였다.

제대로 관리가 안되어 시슬시들해진 화분이었다.

직원들이 물도 주고 햇빛을 쏘여주니 화분을 금새 파랗게 생명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화분의 주인은 모 과장님이 스승의 날 때 선물받은 것이다.

그러다 며칠이 지났고, 본관 검사실 창가에 놓인 모 과장님의 화분을 보고 깜짝 놀랐다.


포스트 잇으로 " 안녕 하세요. 저는 엘리자베쓰 입니다." 라고 써 붙여놯기 때문이다.

여직원들과 화제 삼아서 깔깔댄다.

" 과장님 잭과 엘리자베쓰 결혼 시켜요"

" 어딜 감히, 넘 볼 것을 넘 봐야지.. 난 이 혼담 반댈세"

" 잭은 친구로만 생각할거야"


술 김에 나온 생각을 행동에 옮기려니 고민이 든다.

사실 선약이 있을 수도 있고 받았으나 싫어할 수도 있고 등 이유야 언제나 모든 일에 많다.


" 10월 09일 저녁에 약속 있으세요"

" 왜요"

" 제가 공연 하는데... 합창단이거든요 오셨으면 좋겠어요"

" 아 네"

" 그럼 공연 날 뵙겠습니다."


우리는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는 안도감과 기쁨 그리고 흥분으로

심장이 쿵쾅거렸고 서로를 다둑였다.

마지막 커튼이 닫혀있음에도 박수 소리는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나는 단원들과 흥분을 나눌 새도 없이 잽싸게 분장실로 달려갔다.

무대의상을 벗고 평상복으로 얼른 채비해야 한다.

'성소수자 가족모임'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분장실 출입문을 나서는데 모 과장님이 꽃다발을 들고 서 계셨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나는 카페 자리에 앉았다.


그가 선물해준 꽃 다발은 지금 화병에 꽂아졌다.

단풍이니 뭐니 남들 가을 구경에 신났을 때 연습에 투자하느라

사실 여름인지 가을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나에게

그가 준 꽃들은 보상과도 같았다.

마치 가을을 예쁘게 선물해 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와 나는 어떻게 관계가 풀어질지 잘 모른다.

술한잔 아니 그는 술 마시면 응급실로 실려간다.

주량이 소수 한 두잔, 맥주 한 두잔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대신 와인은 마신다고 하더라


그가 나처럼 자신을 받아 들였으면 좋겠다.

사람들하고 있으면, 왜 둘이 똑 같은 행동들- 회식 때 상 밑에서 냅킨 찢으면서 놀기, 복도에서 창문 바라보기, 틈만 나면 연습장에 그림 그리고 있기, 낚서하기 등, 아 일하다 노래 흥얼거리기..... 그리고 사람들에게 갑자기 신경질 부리기 등 -

커뮤니티에 나오기 전 그리고 여전한 나의 행동들을 그 역시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타인의 성정체성을 내가 결정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가끔 그 과장님을 보면

안타깝다.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심리학 책을 탐독할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태어나진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면 좋을 텐데

아버님이 목사여서 일까

그는 여전히 자신의 감정에 버거워한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출발했음에도 말이다.


그는 우리 공연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보았을 것이다.

그의 소감을 묻고 싶었지만, 그는 결코  곁을 내주지 않을 것이다.

수 많은 시행착오와 연습을 통해서, 자신을 들키지 않는 법을 터득했을 거니까

후속 작업을 해야 하는 몫도 결국 나의 몫이 되어버린 걸까


" 과장님, 저의 이야기를 들어 보실래요"


그가 나에게 아니 언니/형에게 그것도 아니라면 선배에게 말을 건네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다.


" 그 모든 시작은 사랑이었고, 사랑이었다." 라고 말이다.



이제  다음 주까지 새로운 사업을 위한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읽을 거리는 많고 나의 경험은 일천하다.

영문자료 초벌 번역한 거 부터 다시 찬찬히 뜯어 보고, 필요하면 심리학 책도 좀 볼 것이고,

나미프 친구가 선물해준 브로슈와 소 책자들도 읽어야 한다.

정말 산더미 같은 자료들이다.


아웅 ^^ 엄두가 안나서 게시판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공연 후에 얼굴 보기로 한 친구사이 회원들이 하나 둘 씩 떠오르네


가열찬 10월 ~11월이 되겠고만  ㅎㅎㅎ






가람 2014-10-11 오전 05:26

찡하다.. ㅋ 형 고생 많으셨어요~~

크리스:D 2014-10-11 오후 18:37

언니 항상 감사하고 응원해요.. 홧팅!!

SB 2014-11-10 오전 09:42

찡하네요. ㅎㅎ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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