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시간이 맞아서 재작년 특별 공연에 달랑 한 번 단기 속성으로 투입된 것 말고는 멀리 있느라 줄곧 사진이랑 후기만 보고 부러워하고 즐거워한 지보이스 공연...
올해부터는 드디어 함께 할 수 있게 됐지만, 할 일도 많고 마음의 여유도 없는 바람에 정말 막판에 스탭(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럽지만)으로서만 참여했네요.
음향, 조명, 촬영, 녹화처럼 복잡하고 전문적인 일을 맡은 것도 아닌데 긴장하는 바람에 그만 예행 연습 때는 실수도 했죠. 어리버리한 저를 차분하게 잡아주신 천공님, NJ님이 아니었으면 실제 상황에서 어땠을지...! 두 분, 정말 멋지시고, 고맙고, 많이 의지 됐어요.
공연 기획하시고 작사, 작곡, 선곡, 편곡하시고 연주, 지휘하시는 단장님, 지휘자님, 반주자님 등 음악가분들의 고충은 문외한으로서 짐작조차 못하겠고 그저 감탄할 뿐이죠. 경험상 가사 외우고 음정 익히고 춤 배우는 것 자체만으로도 쉽지 않은데, 여럿이 맞추는 건 더더욱 어렵더군요. 그리고 무대 뒤에서 일하시는 여러분 덕분에 공연이 무사히 치러진다는 걸 이번에야 비로소 실감했어요.
비록 공연을 객석에서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뒤에서 지켜보는 건 색다른 맛이 있더군요. 단원 여러분은 물론이고 스탭 여러분의 긴장과 흥분도 그대로 전해졌구요. 특히 이번에는 가사 전달이 아주 중요한 차분한 곡이 많았는데, 단원 여러분 호흡이 잘 맞고 음향 설비도 좋아서 무대 옆에서도 가슴이 뭉클했네요...
추첨 때 무대에 올라오신 관객분들께서 '지보이스 공연이 쇼킹하다는 얘기 듣고 왔다'고 하시던데, 이번 공연에서 '볼거리'가 줄어든 건 사람마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죠. 하지만 우리가 누구이고, 왜 함께 모여서 이런 공연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싶고 또 살아가야 되는지... 이런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는 계기가 충분히 되지 않았나 싶어요. 가령 지금은 대도시라면 게이 합창단 하나쯤 있고 성소수자 인권 지수가 더 높다는 미국도 처음부터 상황이 그런 건 전혀 아니잖아요. 저 유명한 1969년의 스톤월 항쟁도 결국 법적 근거조차 없는 게이빠 탄압에서 비롯된 거구요. 당연한 얘기지만, 약자일수록 자기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다는 걸 계속 일깨우고 서로 힙을 합치지 않으면 권리를 가지긴커녕 빼앗길 수도 있죠. 슬프지만 권리는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더구나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숨겨야 하고 욕 먹을까 전전긍긍해야만 하는 사람은 있지도 않거니와 있어서도 안 되잖아요...
그리고 이번에 무엇보다도 실감한 건 이런 공연이, 이렇게 세상에 우리를 드러내고 우리의 기쁨, 슬픔, 분노, 사랑, 희망을 표현하는 것이 그 자체로서 더 없이 행복한 일이라는 점이예요. 단원 여러분, 지휘자님 모두 시간이 갈수록 만면에 웃음을 띠시고 얼굴에서 빛이 나시던데, 'gay'라는 말의 원래 뜻이 절실하게 와닿는 순간이었어요.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고 마음이 움직이는 이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신 여러분이 정말 고맙더군요. (그리고 솔직히 배 좀 아팠어요...!) 사실 지보이스 역대 공연 중 제일 큰 공연장이어서 걱정도 했지만, 객석이 꽉 차는 바람에 서서 관람하신 분도 계셨다는 말씀 듣고 고맙고 뿌듯했네요. 일반, 이반을 가리지 않고 공감할 수 있고 나와 남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게 했기 때문에 감동 받고 돌아가신 관객분이 적잖으셨을 거예요.
늘 그렇지만, 한아름 받기만 하고 드린 건 별로 없어서 민망하네요. 준비하시고 참가하신 여러분 모두 힘드셨던 만큼 보람이 크셨을 텐데, 공연 후 허탈증에 시달리지 않으시길... 시간, 비용, 인력, 정력 때문에 1년에 한 번 공연하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지지만, 마음같아선 1년에 두 번 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정말 내년에는 동경 아니라 제주도라도 가는 지보이스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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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무대 뒤에서 잘 이끌어주시고 손도 잡아주신 덕분에 긴장도 많이 풀렸었거든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