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조금 바빠졌습니다. 바빠지니 딴 생각할 겨를이 없어 "그때그때 해치울 것들"만 하고 살게 되어 쌈박하긴 합니다. 머리도 텅 비고요. 덕분에 오늘처럼 밤이 늦다 못해 하늘이 어슴프레해질 때까지 잠자리에 들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기도 했지만요.
오늘은 일이 있어 홍대입구에 간 김에 아는 누나를 만났습니다. 누나가 "2만원" 안에서 옷을 사주겠다고 무척이나 선심을 써서(내가 낸 밥값은 정확히 5만 7천원에 불과했지만) 한 벌 얻어 입어 보겠다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죠.
그러나 결국 씻을 수 없는 상처만 입고 말았습니다. 마음에 드는 티가 있어서 입어 보였더니 그 누나가 대뜸 "너 옆구리에 살 붙었냐? 푸하하하 너도 다 됐구만~"하고 박장대소를... 옆에 있던 점원도 "푸흡"하고 황급히 입을 가리더군요. 이런 가공할. 그래도 그 점원은 손님에게 위로를 해야겠다고, 하느라고 한답시고 건낸 말이 "어머, 손님, 일본사람 같아요~" 였죠. 그때 그 누나가 또 "오덕후겠지" 하는 겁니다. 망할.
아니, 근데 좀 궁금하더라고요. 홍대앞에선 "일본사람" 같다고 하는게 일종의 칭찬인가보죠?
순전히 취향입니다만, 니뽄삘이니 간지 좔좔이니 하는 옷차림이, 뭐랄까 그냥 좀 촌스럽더라구요. 물론 저를 아는 사람이라면 네 년이나 좀 챙겨 입으라"고 버럭하겠지만. 아무튼 그렇습니다. 일본사람 같다는 말을 듣고 기분 좋아라 한다는 것도 그렇고.
밑에 "백인을 선호한다"는 글을 읽자니, 이건 마치 예전에 저 대학 다닐 때 걸핏하면 "공대생 같다"고 손가락질 받던 제 모습과 다를 바가 없네요. 그때도 이해가 잘 안 가긴 했지만. 그런 말을 하려면 최소한 문대나 상대에는 킹카가 수두룩 빽빽해야 할 것 아닙니까. 외모만이 아니라 수업시간에도 알멩이 없이 썰이나 푸는 문대생보다는 간단명료하게 한 단락, 한 문장으로 정리하여 전달하려는 공대생의 태도가 더 기억에 남습니다.
이미지의 노예가 된 사람들을 속여 먹는 다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입니까.
그런 사람들을 올무로 몰아가는 것은 일도 아닐 겁니다. 어떻게 한 사람을 믿고 안 믿고를 그리 쉽게 결정해 버릴 수 있지요? 겉모습만 가지고 호감이니 비호감이니 하는 것도 생각해 보면 이치에 맞지 않고요. 백인이건 흑인이건, 일본사람이건 조선사람이건 "짱꼴라"건, 그 밥에 그 나물이요, 그 뱃속에 오물이 들어 있는 건 매한가지 아닙니까.
동이 터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또 잠깐 새우잠을 자고 집을 나서야 할 신세를 한탄하며 몇자 주절거렸습니다.
-지금 제 정신이 아니거든요? 이게 뭔 말이람, 할 지도 모르겠네요. 낮에 다시 읽어 보고 지우든가 해야겠습니다. 일단은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