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 권고안 마련
[동아일보 2005-12-19 12:39]
[동아일보]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조영황·趙永晃)가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활동 범위 확대, 쟁의행위에 대한 직권중재제도 폐지, 사형제 폐지, 국가보안법 및 보호관찰제 폐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인권 NAP) 권고안을 마련한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인권 NAP 권고안에는 정부의 의견이 일정 부분 반영돼 있어 정부는 이 권고안을 상당 부분 수용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권고안의 내용이 대부분 그동안 진보 진영에서 주장해 온 민감한 사안들이어서 법률 개정 또는 폐지 등의 추진 과정에서 상당한 논란과 파문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본보가 입수한 이 권고안은 A4용지 130여 쪽 분량으로 시민적 정치적 권리 보호 영역 9개 분야,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 증진 영역 7개 분야,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의 인권 보호 영역 11개 분야 등 모두 3개 영역 27개 분야를 담고 있다.
이 권고안은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획일적 포괄적으로 금지한 관련법을 개정해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활동 범위를 확대하도록 했다. 이는 교사의 정치활동 제한을 합헌으로 규정한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인권위는 노동권 강화를 위해 직권중재제도의 폐지, 쟁의행위에 대한 형사처벌과 민사책임의 완화, 직장폐쇄와 대체근로 제한, 필수공익사업장 범위 축소 등을 핵심 추진 과제로 설정했다.
이와 함께 비정규직과 관련해 동일한 가치의 일을 하는 노동자에게 임금, 근로시간, 복지 및 근로조건의 동일한 처우를 보장하도록 하는 권고도 있어 재계의 반발이 예상된다.
양심과 종교의 자유 보장을 위해 인권위는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사립학교의 종교 교과목 채택이나 종교 행사 때 학생에게 선택권을 부여하도록 했다. 최근의 사립학교법 개정과 맞물려 논란이 커질 수 있는 부분이다.
이 권고안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집회 장소, 시간, 방법을 규제하는 조항도 삭제하거나 개선하도록 권고해 무분별한 집회로 주거권 침해 등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의 인권과 관련해 권고안은 성적 소수자인 동성애자와 성전환자가 성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형법상 강간죄 구성 요건의 대상을 ‘부녀자’로 한정한 규정과 범죄 행위를 ‘성교 행위’로 제한한 규정을 개정토록 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인권 NAP가 시행되면 국내 인권 상황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권고안은 내년 초 인권위 전원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 정부에 통보되며 정부는 이 권고안에 따라 인권 NAP 세부 실천계획을 수립해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 시행하게 된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인권 NAP·National Action Plan):
한 국가의 인권 보호 및 신장을 위한 법 제도 정책을 총괄하는 종합적 실행 계획. 199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세계인권회의에서 참가국들이 만장일치로 국가인권기구 설립과 인권 NAP 수립을 결의했다. 유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위원회는 2001년 5월 한국에 인권 NAP 수립을 권고했다. 한국은 내년 6월 30일까지 유엔에 인권 NAP를 보고해야 한다.
성전환수술 健保 적용”
인권 NAP 권고안에는 사회적으로 소외됐던 성적 소수자나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환자 등의 인권 신장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남성 간 성교를 비하하는 ‘계간(鷄姦)’이란 용어를 군 형법과 군 인사법 시행규칙에서 고치도록 권고했다. 동성애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용어에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성전환 수술 시 국민건강보험을 적용하도록 권고한 내용도 눈길을 끈다. 인권위는 또 성(性) 변경 신청 절차 및 결정 과정을 간소하게 하도록 정부에 요청할 계획이다.
인권위는 에이즈 환자와 한센병 환자(한센인), B형 간염 환자의 인권 침해가 심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에이즈 환자에 대한 강제 검진과 취업 제한, 실명(實名) 신고 규정을 담은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을 개정하도록 권고했다.
또 직장 건강검진 뒤 에이즈 감염 사실을 본인에게만 알리도록 관련 법령을 개정해 에이즈 감염자가 고용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인권위는 밝혔다.
인권위는 한센인과 관련해서는 과거 국가기관이 한센인에게 행한 인권 침해의 진상 규명, 한센인 명예 회복, 적절한 보상책 마련을 권고했다. 전국 89개 한센인 정착촌의 생활환경 개선도 요청했다. B형 간염 환자가 채용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라고도 권고했다.
병사의 인권 보호 방안으로는 얼차려나 암기강요 금지 등을 군 형법에 명시하고 군내 가혹행위와 의문사 사건 수사 시 민간단체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회복지시설 생활인의 인권 보호를 위해서는 사회복지시설에 공익이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인권위는 주장했다.
한편 인권위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생명윤리와 관련해서는 ‘생명권 보호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생명윤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라’는 다소 모호한 권고만 하고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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