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영자신문부에서 1년에 한 번 발행하는 영자신문을 배부했다. 뭐 볼 게 있을까 싶어서 받아 들었는데 내 눈에 들어온 ‘homosexuality’라는 한 글자.
왠 거냐 싶어 얼른 펴봤더니 동성애 찬반 의견을 실은 것이었다. 그네들이 찬성을 하던 반대를 하던 상관없는 것이지만, 뭐라고 써 놨나 궁금하기도 해서 읽었다.
찬성 의견엔 동성애가 옛날부터 있었던 것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는 이야기가 있었고 예상했던 대로 반대 의견엔 에이즈라던가 더럽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가장 압권이었던 문장은 “homosexuality is a sin.”
그 날 학교에선 합창대회가 있었던 터라 야간자율학습을 안 해도 된다고 하길래 친구와 영화를 보러 갔다. 가는 길에 본 레즈비언 커플.
((좋겠다~))
속으로 부러워하며 지나가는데, 친구가 말을 꺼낸다.
“어이구~ 쟤네들 빨리 철이 들어야 되는데…. 난 레즈비언들이 너무 불쌍해 보여, 왠 줄 알아?”
((너보다 안 불쌍해 보이는데.))
“왜?”
“쟤네 지금 좋다고 저러다가 나중에 형님 동서로 만나면 어떡해?”
이미 친구인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걸 거의 확신하고 있으면서도 그런 소리를 하는 친구가 잔인하게 느껴졌지만, 그런 말에 토를 달아봐야 나만 불리해질게 뻔하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왠지 몰라도 몇몇 사람들은 동성애를 사춘기 시절에 이성과 만나기 전 예행단계 정도로 보는 경향이 있다. 동성애를 죄라고 하는 것도 싫지만, 이런 생각이 난 더 싫다.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이성애자로 돌아온다는 생각.
누군가에게 커밍아웃을 했을 때도 그 사람은 내게 사춘기라서 그런 거라며, “대학 가봐라 여자가 눈에 들어오나.” 뭐 이런 소릴 했었다. 물론 사춘기 때 성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과정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나름대로 진지하고 심각한 이야기였는데 그런 식으로 받아 쳐버리니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언제쯤 동성애가 ‘한 때’라는 인식이 없어질까.
내가 나이가 더 들면 그런 이야길 안 들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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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까마종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