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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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보이 2005-02-16 20:4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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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여로 (Sunday Bloody Sunday, 존 슐레진저, 1971)
피터 핀치, 글렌다 잭슨, 머레이 헤드


이 영화를 구하기 위해 3년 전에 수유리 비디오 가게를 다 뒤졌지만 코빼기를 볼 수 없었던.

존 슐레진저 감독의 전성기는 아마 이 영화와 전작 '미드나잇 카우보이'를 연출했던 사십 대 초반인 것 같습니다. 두 작품 모두 구성도 튼튼하고 힘도 있어요. 그리고 헐리우드 장르 규칙에 완전히 포박당하기 전이어서 이 두 영화는 영국 영화 분위기도 물씬 나고 몇 개의 씬에선 서유럽 영향도 포착해낼 수 있습니다. 잘 만들었네요. 말년에 느즈막이 커밍아웃했던 존 슐레진저 감독의 필모그라피 중 졸작 유작인 '넥스트 베스트 씽'을 제외하고 섹슈얼리티에 관해 가장 밀도 높게 접근한 듯 보이는 작품입니다.

젊은 양성애자 남자인 봅을 사랑한 중년의 게이와 한 이혼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일요일에 시작돼서 일요일에 끝나는데, 그 끝 일요일에 봅이 두 사람을 남겨놓고 미국으로 가면서 이야기가 매듭지어집니다. 두 사람의 일상을 잔잔히 보여주고 있어요. 사랑하는 봅이 떠나는데도 두 사람은 짐짓 평화를 가장하지요. 그 고요한 엔딩 씬에 다다르게 되면 왠지 가슴이 저며오기도 합니다. 묘하네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중년 게이와 이혼녀가 봅을 떠나보낸 후 계면쩍은 듯이 미소를 지으며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이 압권입니다.

시드니 루멧의 걸작 '네트워크'에 출연해서 훼이 더너웨이와 열연을 펼쳤던 피터 핀치의 무표정한 연기가 돋보입니다. 이 영화로 그 해 영국의 영화제들에서 남우주연상을 싹쓸이했다는데 그럴 만도 해요. 고혹적인 내면 연기.

이 영화 제작 년도인 1971년이면 영국에서도 동성애자들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입니다.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의 공공연한 습격이 당연시되던 시절이지요. 그것이 중년 게이와 젊은 봅의 정사 씬이 제법 날서게 보이는 까닭이겠지요. 물론 그의 최고 작품은 여전히 '미드나잇 카우보이'지만, 제작년에 존 슐레진저가 타계했을 때 그저 고만고만한 감독이면서 궤적을 그리기가 좀 거시기했었는데 이 '사랑의 여로'를 보고 나서는 그가 조금 달리 보이네요. 아마도 베니스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데뷔작부터 해서 그의 초기작들을 거의 보지 못한 탓이겠죠.

역시 부질없는 의문이지만, 만일 그가 헐리우드로 건너가지 않고 계속 영국에서 영화를 제작했다면 어땠을까요?


비디오 출시명 : 사랑의 여로

Marty Balin | He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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