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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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보이 2004-08-25 13:5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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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펀트 (Elephant, 구스 반 산트, 2003)


지젝의 '실재 눈물의 공포'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난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롬바인'보다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가 콜롬바인 총기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한 층위 업그레이드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종종 다큐멘타리가 이미 선택된 태도로 관객들에게 실재 사건의 '실재 눈물'인 양 믿게끔 종용하는 방식은 감정을 과잉시키는데 도움이 될지언정 사건 속에 산개한 여러 개의 진실들을 대면하게 하는 데는 그닥 효과적이지 못하다.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는 마치 작정한 듯이 헨드 헬드로 여러 학생들 뒤를 쫓아다니면서 생략과 반복을 거듭, 모호한 아름다움을 지닌 시적 이미지들을 나열한다. 헐리우드에 중독된 미국 평론가들의 불만처럼 롱 테이크로 뽑아놓은 샷들은 길고 무의미하다, 또 건조하다. 후반 20분의 총격 씬을 제외한다면, 구스 반 산트의 카메라는 시종일관 사건 당일 학교의 일상을 꼼꼼히 묘사하는데 집중되어 있고 이 집중력은 우리에게 낯선 영화보기 방식을 요구한다.

어떤 낯선?

콜롬바인 학교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찰스 헤스톤을 비판하고 총기 판매 금지를 요구할 것인가? 아니면 왕따 학생들의 신경질이 빚어낸 이 참혹한 비극에서 학교 내 왕따 문제를 지적할 것인가? 콜롬바인 사건의 배후에는 나찌가 있었던 것일까? 구스 반 산트는 관객들이 해석하기에 달라질 수 있는 여러 진실의 화각들을 겹치고 포개놓기만 할 뿐, 어떤 답도 종용하지 않는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롱 테이크를 당신이 주의깊게 따라가다보면 어느덧 진실들은 각기 다른 표정의 얼굴들로 드러나, 조용한 하늘 밑으로 구름이 춤을 추고 있는 엔딩 샷과 조우했을 때 콜롬바인을 대하는 우리의 사고가 한층 숙성되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가 흐르는 아름다운 가을 날의 교정에서 아이들은 제각기 가진 우주의 크기만큼 재잘거리며 삶을 소진시키고 있다. 총격의 주범인 두 아이들마저 피아노를 치고 함께 목욕을 하며 서툴게 키스를 나누는, 그들 만큼의 진지한 삶을 웅변하는 그 모든 장면들은 파괴적이고 참혹한 사건의 장면들과 배리되어 장면과 장면 사이, 사건과 원인 사이의 모호한 갭 속에 바로 우리 역시 관여하고 있지 않냐는 의문을 착종시키고 있다.

TV용 영화 제작을 위해 추렴된 350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구스 반 산트는 연기라곤 전혀 초짜인 학생들과 함께 그들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 20여 일만에 깔끔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아이다호'의 키에누 리브스의 배신처럼 헐리우드 감동 조제사로 변신한 듯 보이던 그가 오랜만에 초기의 인디적 감수성과 조우하는 순간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마음연결
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