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온 지 몰랐었다.
겨우내 소화 불량 걸린 것처럼 내리지 않다가 미친듯이 내려 버린 눈
허리 다독이시는 농민들의 깊은 한숨이
때 늦은 삼 월의 심통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좀 더 수월하게 넘겨보자며 머리 쥐어짜며 수강신청을 할 때에도
미처 봄이 온 지 몰랐었다.
다 늦어 어둑해진 교정에서 책을 바리바리 가슴에 안고
선배들을 좇아 졸졸거리는 걸음을 띠는 앳된 신입생 무리를 보았을 때도
책더미를 한아름 안고 새로 잡은 도서관 사물함의 열쇠를 다부진 표정으로 잠그는
복학생의 결연한 모습을 보았을 때에도
신입생들을 유혹하는 동아리들의 현란한 신입 회원 모집 대자보를 보았을 때도
몰랐었다.
수업을 마치고 쫓기듯 학교 문을 나설 때 문득 불어오는,
낯설은 따뜻한 바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피부에 오소소 돋았을 때
비로소 봄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꺼운 외투를 벗어야 된다는 것도,
새로운 어수선함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도
교정 곳곳에서 발견되는 낯설음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꽃은 언제나 피려는지 모르겠다.
그런 핑계라도 생긴다면 봄이 왔노라고, 향기라도 맡아보라고
봄을 싫어한다는 친구놈의 옷자락이라도 끌고 창문이라도 열어볼 일이다.
여기저기 소란스러운 꼼지락들,
동중정.
내일은 일어나서 환기라도 시켜야겠다.
그리고 지지리도 안팔리는 것들의 가슴에도 아름다운 장미는 못 되더라도,
수수한 들꽃이라도 피웠으면 좋겠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