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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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나가는 집회였다.

군 입대 후 처음이니, 막상 도착한 자리가 낯설기까지 했다.

게다가 레인보우의 깃발아래 서는 만큼 의식하지 않으려 했으나

긴장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과 생각보다 많은 단체들이 참여했다는 놀라움과 함께

집회의 목적, 약간 쌀쌀한 날씨 등의 이유로 옷깃을 추스르기에 여념이 없던 찰라

저만큼 앞에서 펄럭이는 모교의 깃발을 볼 수 있었다.


반가움이 앞선 것은 잠시였고, 날 알아보는 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것을 의식하자 시선은 자꾸 땅으로 떨구어졌고,

그렇게 저렇게 모면하다시피 시간이 흐르고 행진이 시작되었다.

몇 발자국 띠지 않았을 무렵, 꽤 친분이 있었던 여후배가

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자연스레 그녀의 시선으로부터 도망을 쳤고,

행진하는 사람들의 틈바구니로 숨어들고 말았다.


행진 도중 내내, 후회했다.

먼저 다가가 자연스레 인사라도 건넬 걸.

앞으로 살아가면서 가장 기본적으로,

그리고 수없이 대면할 문제들에 버둥대는 모습이라니..

앞에서 구호를 외치는 형들의 목소리는 울림이 되어 귓가에서 맴돌았고,

이 후의 그날 일정에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쯤 꽤 멀리 왔을 거라고 자위했었다.

하지만 내가 돌아본 곳은 지금은 다 출발해 버리고 없는 텅 빈 출발선이었다.

장금이 2003-10-27 오전 09:57

1997년 대학로에서 해피 투게더 심의 문제로 서명을 받을 때, 저도 모자를 깊이 눌러쓴 채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그런 것쯤 별 거 아니라 생각했는데도, 모자챙 그늘 밑이 좁아 더 숨을 곳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습니다.

이제는, 늙어버린 게 아니라, 허허롭게 웃을 수 있게 된 것은, 아마도, 내 옆에 내 친구들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나의 게이 친구들.

한상궁 2003-10-27 오후 18:38

저 역시... 1997년도 친구사이 자료화면을 보면 모자쓰고 마스크까지 한 모습이었더래요... 좀 더 배려를 해드리지 못한 점 미안하구요... 라이카님이 있어 그날 우리는 더 힘이 났어요.

도토리 2003-10-27 오후 21:53

저는 대학을 다닐때도 학생회에서 주최하는 집회나 대모에 참가르 해본적이 없었어요.
그당시엔 나에게 직접적인 일이 아닌 일에 괜히 신경스고싶지 않았던것 같아요.
그리고 나와 뜻이 같더라도 괜한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아 뒤로 숨어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자를 꾹 눌러쓰더라도 마스크를 하더라도 참가를 해서 정의를 위해 참가를 했다는것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저도 다음번엔 함께해서 우리들의 목소리를 조금이나마 더 크게 외칠 수 있도록 하고싶습니다.
아자~ 홧팅!

2003-10-27 오후 23:03

내가 보기에 넌 출발선에서 아주 멀리 와 있는걸...
예상치 못한 뜻밖의 상황에서는 누구나 그럴수 있단다.
라이카, 화이팅이다.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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