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대전에서 진행하는 아이샵의 검진 프로그램에 검진의사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올 한 해 쉬기로 했기에 어떻게 보면 밥 벌어먹고 사는 일이 이 검진 프로그램에 참여할때 이네요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 한 권을 순식간에 완독하고, 감상에 젖습니다.
나는 정말 수 많은 기준을 만들어 놓고, 그 기준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삶을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 기준이 얼마나 억지스러운지도 모르고, 실제로는 나의 기준이란 것은 타인들의 인정을 끊임없이 갈구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만든 기준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하면서 말입니다.
최소한의 나의 경계를 공고하게 만드는 작업이 한동안 나의 삶의 주제이었고, 따라서 기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를 찾기위한 투쟁이었지만, 실제의 나는 없고 타인들만 내 속에 가득찰
수 밖에 없었음을 고백해야 겠네요.
새벽에 꿈을 꾸었습니다.
몸에 통증을 느꼈고, 그 통증에게 말을 걸어보았습니다.
어째서 아픈거냐고 말입니다.
통증이 나에게 바다와 같은 물을 보여주고는 네 속의 슬픔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어째서 그런거냐고 물어보니. 파란 물 속에서 몇 해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이 떠 올랐고, 울컥하며 아빠라고 부르던 찰나, 눈을
떴고, 그 슬픔이 파랗게 사라졌습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안그런척하는 일은
사실 가식입니다. 아버지 장례를 치루는 동안 내내 다른 가족들 걱정하느라 울지 못했고, 어머니의 그 뜨거운 분노와 애끊는 마음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키느라, 어머니의 책망에도 농담을 형제들과 주고 받았습니다.
어제는 오랫동안 항상 저를 믿어주고 용기를 주었던 후배이자, 친구사이
동기가 미국으로 가기 전에, 술 자리를 가졌습니다. 이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처럼 우리는 친구사이며, 회원들이며, 마음연결 활동, 피오피활동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늘 그렇듯 난 취해서 어지러워졌고 또 중간에 도망갔습니다.
마음이란 것이 진실을 무시하니 몸과 영혼은 그러지말라고 슬픔을 보여주었나 봅니다. 하도 어마어마하게 커서 그 심연으로 내려갈 수 없다며,
두려움이란 감정으로 의식은 그 슬픔을 차단시킵니다.
우리는 카톡으로 널 가만있게 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너에게 했던 말들을 실천해야는데 자신이 없는 목소리로
말을 했습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은 일부 사실이고,
또 일부는 거짓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게 달라지고 시간과 공간이 달라진다고 해도, 설령 앞으로의 시간들은 서로를 잊어가는 과정이라고 해도, 실제 내 몸과 마음은 기억들을 무한하게 저장합니다. 의식은 모르지만 늘 함께 사는 것 임을, 그렇게 우리의 존재는 연결된다는 것을 어렴푸시 깨닫습니다.
떠나는 이에게 눈물 대신에
웃음을 건넵니다
이 웃음으로 남은 자들은
걱정하지 말라며
이 기억으로 잘 여행하리라 기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