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관련성소수자인권침해․차별신고및지원을위한네트워크, 인권단체연석회의,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등 인권단체들은 5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헌재의 판단 속에는 ‘헌법’에서 규정하는 ‘모든 국민’에 동성애자들이 배제되어 있다”고 개탄했다.
이들은 이번 헌재 판결이 “반인권적이고 몰지각한 결정”이며 “동성애자들이 군대 내에서 강제 추행 피해 위험에 더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동성애 혐오증을 부추겨 성 군기 문란의 책임을 동성애자들에게 덧씌우는 이중적 폐해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장서연 변호사는 헌재의 이번 판결이 2002년보다 더 후퇴했다고 평가했다. 장 변호사는 “2002년에 비록 7:2로 군형법 92조에 대해 합헌 판결이 났지만 ‘과거 동성 간 성행위를 형사 처벌하는 나라가 있었지만 폐지됐고 동성 간 결혼을 합법화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며 ‘동성 간 성행위를 형사 처벌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된다’는 두 재판관의 소수의견이라도 있었는데, 이번에는 ‘기타추행’ 부분만 심판대상으로 한정하고 그마저도 기타추행 판단의 지침으로 계간을 듦으로써 계간에 대한 형사처벌이 정당하다고 인정한 전제에서 판단했다”며 “2002년 소수의견보다도 못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임보라 향린교회 목사는 개인보다 군 조직이 우선하다는 헌재의 판단 근거에 대해 “군대 내 다양한 성폭력, 의문사에 대해 눈감겠다는 것이냐”며 “사람을 위해 군이 존재하는 것이지 군대를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임 목사는 또 헌재의 합헌 결정을 ‘환영’한 보수 기독교단체들을 향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동성애자가 치유와 회복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야 말로 맹목적적 종교성을 치유 받아야 할 대상”이라며 “합헌판결 이후 자신들이 개신교 전체인 듯 착각하고 있는 보수 종교계들은 성경적 바른 정의를 운운하지 말고 당신들에 의해 성격이 말하는 정의가 얼마나 훼손되고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졌는지 먼저 성찰하라”고 경고했다.
▲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헌재의 판단 속에는 헌재에서 규정하는 '모든 국민'에 동성애자들이 배제되어 있다'며 '동성애자, 성소수자가 배제된 헌법 11조문'을 파괴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이번 판결이 소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몽 언니네트워크 활동가는 “지난해 유엔인권이사회의 동성애자 차별 금지 서명에 80개국이 넘게 동참했음에도 한국은 이 군형법 92조 때문에 서명하지 않음으로써 성적 정체성을 이유로 동성애자를 차별하고 그들에 대한 폭력을 묵인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됐다”며 “헌재는 이번 판결이 국제 흐름을 진정으로 대변하고 있는 판결문인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헌재의 이번 합헌판결은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더 크게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멍청하고 폭력적인 판결로 헌법의 권위와 명예를 실추시키고 스스로 존재 이유를 깎아내린 헌법재판소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한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활동가는 “다시는 이런 판결이 역사적으로 남지 않도록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드시 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이들은 항의서한과 함께 인권교육자료를 헌법재판소 민원실에 제출했다. 이종걸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인권팀장은 “재판관님들께 공부 좀 하시라는 의미에서 2008년에 군인권네트워크에서 만든 ‘군대 내 성소수자 인권을 위한 병영 내 인권지침서’ 아홉 권을 드린다”고 말했다.
지난 31일, 헌법재판소는 ‘계간 기타 추행’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을 담고 있는 군형법 제92조가 동성애자들의 성적자기결정권, 사생활의 자유,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며 3년 만에 최종 합헌 결정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