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라
20여 년을 각종 꾸밈말을 달고 살아온 이를 만났다.
부평구에 사는 40대 A씨는 조심스럽게 한 마디씩 이어갔다. 감추려하지도 숨기지도 않았다.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그는 천주교 신자다. 성 정체성이 혼란을 느끼면서 가장 먼저 부딪혀야 한 사회 틀이 종교였다. 동성애를 금기시하는 천주교인들 사이에서 남과 다른 나를 두고 방황했다.
세상에 두려움을 느끼다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버렸다. 이성애자들처럼 살려고 했던 노력들, 그를 괴롭혔던 고민들을 잊었다. 그러고나니 마음이 편해졌다고 한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과 달라질게 없어 보였다. 단지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취향이 다를 뿐이다. 이제 평범한 고민을 하나 갖고 있을 뿐이다. 노년을 어떻게 외롭게 보내지 않느냐. 그가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는 이성애자들이 모두 정상이라고 보는 세상이 과연 진실이냐고 묻는다. 남성우월주의로 무장한 이들이 만들어놓은 여성상,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은 오히려 그들을 방어하는 방패막일 뿐이다. 남성과 여성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데서 남녀 차별이 시작되듯,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다. 그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차별의 근간은 다름과 차이를 구분하지 않는 데 있다고 보고 있다.
이성애자들이 방패막을 두르고 있지만 그는 세상과 소통한다. 커밍아웃은 하되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그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이성애자들이 불편해할까 걱정돼서"라고 말한다.
가족들에게 커밍아웃 한 지 20년이 다 돼가지만,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는 게 아닌 원치않는 방법으로 알려졌을 때 닥치는 불안감은 여전히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이 동성애 하나로 묻혀버리기 때문이다. 마치 알몸으로 내던져진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설명한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도 신신당부를 했다. 그가 온전히 세상에 드러내는 순간 사회에서 쏟아내는 화살들을 막을 수는 있지만 그가 해나가려는 동성애자 인권 운동을 침해할 수 있어서다.
올해 활동 목표는 차별금지법이 개정되도록 총력을 기울인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말 통과된 차별금지법에는 성적지향, 병력, 범죄력, 언어와 국가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금지한다는 조항이 빠져있다. 취업을 할 때 등 성적 가치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고 해도 부당하다고 주장할 근거가 없어졌다. 성적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법에서 제외한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또 외국에서 출판된 동성애자를 다룬 책을 번역하는 작업에 들어갈 생각이다. 사람들에게 이들이 갖고 있는 다름과 차이를 알려주는 작업을 시작하려 한다.
A씨는 "사람들 속에서 조용히 살아가도 되지만 동성애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달라지지 않으면 앞으로 살아갈 이들은 또 나처럼 무명씨로 언론을 접해야 한다"며 "네덜란드가 동성애 커플을 법적으로 인정해주는 데까지 30년이 걸렸다고 하니 우리 사회가 당장 바뀌기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작은 부분에서 조금씩 변하다보면 네덜란드보다 일찍 달라지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인천에서 살아가기
인천은 동성애에 무지한 동네다. 동성애자들을 위한 상담소는 물론이고 제대로된 커뮤니티도 거의 없다. 물론 함께 모일 공간은 전무하다. 그나마 인하대에 인터넷 상에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동아리가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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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동성애자 등 성적소수자는 단골 메뉴다. 지난해에도 12월 초 18편이 상영됐다. 어김없이 'OUT:이반 검열 두번째 이야기'라는 제목의 동성애 영화 한 편이 무대에 올려졌다.
문제는 상담소가 없다보니 성폭력 등 어려움을 당했을 때 호소할 만한 곳이 없다는 것이다. 인천여성의전화와 인천여성회 등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지만 여성 관련 상담을 처리하기에도 벅차다. 민주노동당 인천시당에 성소수자 전담 인력이 유일하다. 아직까지 홍보가 덜 된 탓인지 찾는 이는 많지 않다.
성폭력으로 잠시 쉼터를 이용하려해도 공간이 없다. 특히 남성 동성애자는 남성들을 위한 쉼터에 가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 부분이 고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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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성 정체성에 갈등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을 도와줄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무조건 억압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만큼 그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A씨는 "동성애를 거부하는 사회에서 공공기관이 나서 동성애에 대한 상담을 해주는 일은 거의 불가능할테지만 여성 단체나 사회단체에서는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일이다"며 "작은 부분부터 천천히 바뀌어간다면 나중에 큰 변화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소유리기자 (블로그)rainwo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