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비언 (전)지방의원 오츠지 가나코와의 대담>
장소:아이샵
일시:9월2일(일)14시-18시
9월1일에 센터에서 준비한 성소수자 가족모임에 오츠지씨와 어머니가 오셔서...다음날인 오늘..
센터 활동가들을 비롯한 여러 성소수자단체 활동가분들과 같이 면담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적은 순서대로 대강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내일 아침 출근 관계로 급하게 작성하느라) 맞춤법 및 글 순서등이 엉망인 부분이 있을 것이나...알아서 읽어주시면 감솨^^;...
전체적인 느낌은....오츠지씨..한국에 비해서 성소수자 운동 조직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참 용기있는 분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멋있었음...^^;..
그런데..일본..운동 상황은 별로 안좋은 것 같음....--;..배울만한 것이 많아 보이지는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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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퍼레이드
1)퍼레이드 현황
일본도 퍼레이드 및 영화제등이 열린다. 퍼레이드는 올해 5개의 도시에서 열렸다.(지방으로 확산되는 중이다.) 후꾸오카에서는 5월에 200명정도가, 고베에서는 6월에 300명정도가, 참여했었고 도쿄에서는 8월11일에 2800명(거리구경인원포함하면 4300명)이 참여했다. 9월에는 삿포르에서 1000명정도가 참여할 예정이다. 삿포르의 경우 도지사와 시장이 와서 인사말을 하기도 한다. 고베시의 경우에는 퍼레이드가 독립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시 축제의 일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올해에는 사민당대표가 와서 인사하기도 했고 민주당,공산당에서도 왔었다. 시에서도 후원을 받기도 했다. (자민당에서도 축하메세지를 보내오기는 했지만 이는 사실상 받아낸 것이라고 한다.)
2)퍼레이드 역사
90년대 퍼레이드를 처음 준비한 사람들은 정치색이 있는 사람들이어서 퍼레이드도 상당히 정치색을 띄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커뮤니티 내부의 반발(주로 업소주인들)을 겪으면서 2000년도에는 그저 걷는 행사정도로 되면서 정치색이 약해졌다. 그러다가 2005년(오츠시가 커밍할즈음)부터 다시 퍼레이드가 정치적 색을 띄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비슷하다.
3)퍼레이드에 있어서 한국과의 차이점
한국보다도 더 게이중심적이다. 퍼레이드 참가이원만 보더라도 게이가 6-70% / 레즈가 2-30% / 그 외 정체성이 10%정도 된다. 게이커플은 레즈커플보다 경제적 능력에서 앞서는 경우가 많다. 레즈는 성소수자와 여성이라는 이중의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4)퍼레이드의 정치화에 대한 평가
퍼레이드를 했다고 해서 당연히 lgbt가 정치세력화한 것은 아니다. 단지 이제 시작일 뿐이다. 퍼레이드에 4만정도가 모일수 있는 날이면 그래도 의미있는 정치세력으로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퍼레이드에 인사하러 시장,도지사 정치인들은 그들 개인이 진보적이어서 그런 것이고 아직 관행으로 정착되지는 못하였다.
2. 커밍아웃과 참의원 선거
1)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
어렸을 때부터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있었고 18세때 첫 번째 대학을 갔을 때부터 왜 남자를 좋아하지 않을까 고민을 하다가 23세때 두 번째 대학을 다닐 무렵에 정체성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동성애 관련 여러 책들을 접하고 클럽등에도 나오면서 그동안 내가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회가 문제가 있었던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사회를 바꾸려면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대학 때 지방의원 인턴을 하게 되면서 어떻게하면 레즈비언으로서 정치를 할수 있을까 고민했다. 사회는 그냥 바뀌는 것이 아니라 바꾸려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바뀌는 것이라는 생각하에 하비밀크의 다큐와 책등을 보면서 정치가로서의 길을 가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2)2003년 도의원선거와 그 이후의 커밍아웃
2003년 오사카 지역 도의원선거를 나올때 커밍을 하고 출마를 해야할까를 고민했는데 주위 지지자들이 당선후에 커밍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충고를 하여 당시에는 커밍을 하지 않고 도의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도의원 선거에서 당선되고 난후 4년 임기의 중간 정도인 2004.8월에 도쿄 퀴어퍼레이드에서 공식적으로 커밍아웃을 했다.
내가 커밍했을때인 2005년 8월에 일본에서는 종전 60년을 맞아서 여러 큰 행사들이 있어서 나의 커밍이 전국적으로 이슈화 되지는 못했다. 다만 내가 지방의원으로 있던 오사카 지역에서는 상당히 알려졌다.
오히려 전국적 이슈가 된 것은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였는데 특히 해외 언론에서 많이 다루어주었다.(아시아판 뉴스위크의 표지였다고 함.) 해외의 주요 언론들이 거의 모두 보수적 일본사회에서 레즈가 국회의원후보로 나온다는 것을 다루어주었다. 이러한 해외언론의 보도들이 일본 국내의 반대 여론을 무마하는데 일정정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위 커밍 인터뷰 과정에서 유럽-미국 언론사 기자들과 일본의 언론사 기자들의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 차이를 엿볼수 있었는데 유럽기자들은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기본적 인식이 되어있던 반면 일본 기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3)2007년 7월 참의원선거의 패배
2007년 4월까지 도의원임기를 마치고 올해 있는 참의원선거에서 민주당에서 비례대표로 나오는 것을 승인받았다.(일본의 비례대표는 그 선출방식이 우리와 많이 다르다. 유권자들이 정당과 비례후보에 각 기표를 하고 정당의 득표수를 한도로 비례의석수를 확보한 후 그것을 각 후보들이 얻은 득표순대로 순위대로 배분하는 것 같다.-필자주-)
결과는 35명중 29등을 했고(1등은 50만표/29등인 가나코씨는 3만6천표를 획득) 민주당은 21번까지만 비례의석수를 확보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가나코씨는 당선에 실패하였다.
4)참의원선거에 나온 이유/민주당으로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참의원선거에 나온 이유는 지방의원만으로는 전국적인 이슈를 만들어내는데 한계가 있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성소수자에 가장 우호적인 정당은 사민당이다.(위원회가 별도로 있는 정당은 없다고 함.) 사민당의 경우 당대표가 퍼레이드에 정기적으로 오기도 한다. 그러나 소선거구제를 택하고 있는 일본 정치에서 지역구에서 이기려면 집권 자민당 혹은 1야당인 민주당의 후보가 되어야 가능성이 높았고 (보수적인 자민당을 택할 수는 없으므로) 그래서 민주당을 선택했다. 민주당의 경우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성전환자성별변경특별법상 성별변경의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운 점이 문제인데 그 요건을 완화하는 것을 공약으로 내놓기도 하였다.
민주당 좌파와 사민당이 유사하고 녹색당은 없지만 무지개와 녹색모임이라는 의원들 모임도 있는데 나는 이들과 정치적 입장이 유사하다.
5)결혼식을 올렸다는데
비례대표 후보로 승인을 5월에 받았고 6월에 결혼식을 올렸다.(물론 동성혼은 인정되지 않지만 의식을 올릴수 있으니..)민주당 대표와 간사장등의 축사를 받아냈다. 동성애자로서 “인정받은” 오츠지의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6)비례대표를 나올때 민주당내의 반대는 없었는가?
동성애자가 나오면 보수표를 잃을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가 있었으나 당대표인 오자와씨가 승인을 하여주었다.
7)참의원 선거 과정에서 성소수자 대중들의 참여정도는?
게이바 사장들의 모임(300개업소)이나 게이잡지 사장들이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었다. 레즈비언들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었다.
8)당선되었으면 했을 정책은?
동성파트너쉽 관련 제도를 만들고 싶었다. 오사까 도의원을 할때 동성파트너쉽관련 심포지움들을 수차례 열었는데 지방의원이라는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9)참의원선거과정의 어려움은?
일본 정치제도의 특성상 비례대표 선거에서 이기려면 많은 자금과 조직을 필요로 하는데 그것이 부족했고 많은 성소수자들이 선거 자봉을 했는데 정작 자봉을 하면서도 주변에는 오츠지를 지지해달라고 얘기하지 못해서 표확산에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부에서도 왜 정치에 나와서 우리들의 존재를 알려서 귀찮게하느냐 그냥 두어도 잘사는데..라는 식의 반응들도 있었다. 성소수자들의 10%만 자신을 찍어주었어도 충분히 당선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오히려 일본의 비동성애자/비성전환자중 단카이세대(아마 우리의 386세대와 유사한 듯)들이 나를 많이 지지해주었다.
3. 일본의 성소수자 운동의 현황
1)퍼레이드
앞서 본바와 같음.
2) 인권단체
(이 부분은 내가 졸아서 잘 못들었다.) 아카라는 단체가 있는데 활동방식등이 한국의 단체와 많이 다른 것 같다. 한국과 같이 상근자를 두고 있는 단체는 없고 대부분 이슈 중심으로 자원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중심이다.
그런 단체들이 없다보니 참의원 선거에서도 성소수자들의 지지를 조직화내기가 어려움이 많았다.
3)다른 운동과의 관계
노동운동과 성소수자운동은 아직 상호 무관하다. 이 부분은 노력할 예정이다.
여성운동과는 많은 접점을 가지고 있다. 유명한 페미니스트 중에 레즈가 상당히 많은데 커밍을 안하고 있는 것은 참 모순적이다.
장애운동과도 아직 접점이 없다. 장애인인 이반의 인권문제가 제기되는 정도이다.
4)성전환자
성전환자는 “장애”의 범주로 바라보는 관점이 우세하며 성전환자에 대한 인식은 (소아성욕등과 유사하게 취급되는) 동성애에 비하여 다소 좋은 편이다.
5)혐오범죄등
공원에서 (성행위하는 남성들을 대상으로) 폭행하거나 금품 갈취하는 사건들이 종종 보고되고 있으며, 사망자가 발생한 적도 있었다.
학교에서도 성소수자에 대한 언어폭력, 이지메등이 보고되고 있다.
6)언론,방송
코미디 프로그램등에서 희화화된 존재로 그려지고 있으며 인기있는 연애인 중 성소수자도 있으나 커밍을 하지는 않고 있다. 성전환자의 경우 커밍한 연애인이 있다. 그리고 게이에 비해서 레즈는 아예 언론 자체에서 잘 다루지 않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의 주변에 성소수자가 있을 것이라고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7)일본의 인권보장 실태
인권보호법상에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금지 조항이 있었는데 그 법은 현재 폐기된 상태이다.
8)동성혼
일단 일본에는 파트너가 없는 동성애자들이 많다. 그래서 노후에 대한 고민들을 많이 하고 있다. 그리고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결혼제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동성혼인을 주장할 것인가에 대해서 아직 의견 일치를 못보고 있다. “언젠가는 되겠지라고 하면 안되고 권리는 싸우지 않으면 얻을수 없다.”는 생각으로 현재 연구모임을 진행 중이다.
동성혼의 경우 실제로 문제가 발생하는 부분을 소송화 시키는 방식으로 이슈화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예>영국에서 동반자관계를 인정받은 일본인과 영국인이 일본 입국시에 배우자 비자를 발급받을수 있는지등)
9)일본의 반성소수자 집단은?
정치적으로 반대세력은 신도(일본 고유 종교)정치연맹이라고 있는데 매우 보수적이다. 아베신조를 비롯한 많은 정치인들이 이 소속이다.
일반인들은 커밍을 하면 “나는 괜찮은데 주변사람에게는 얘기하지마”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가지는 호모포비아가 문제인 것 같다.
4. 앞으로의 계획은
다시 국회의원에 도전한 생각이다. 이번에는 지역구로 나가볼 생각이다.
(한국의 최현숙위원장과 공동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란 질문에 대해서-->재일교포인 성소수자 / 이슬람권의 성소수자인권문제등을 자꾸 외교문제화 해야한다. 한계가 많기는 하지만 유엔등의 국제기구를 활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역시 좋은 건 나눕시다.
이쁜 남자도 나눕시다. 아나바다 운동을 벌입시다. 오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