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주위의 의견을 묻던 내가,.. 차마 물어볼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정체성’ 문제였던 것 같다. 결국 이것만큼은 나만의 비밀로 간직해야 한다는 걸 어렴풋이
느낄 정도의 힘뿐이 없었던 것 같다.
혈기왕성한 스무 살_나는 대신 공부를 선택했다. 아마도 못생긴 여자아이에겐 특히 냉정한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나름의 생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둑을 쌓아갔다. 조금씩 물이 차오르고 ..
수년이 흐르자 남에게도 자랑할만큼 커다란 땜이 생겼다.
나이 서른_이제는 제법 스스로에게 너는 ‘게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말로 내뱉는데 나는 10년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서서히 게이사회에 발을 내딛었다. 물론, 그래봤자 나만큼이나 소심하고 폐쇄적인 사람들의 모임에
들어간 게 전부지만.. 처음에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뱀파이어 같은 그네들의 삶이 멋져보였다. 잘 꾸며진 외모와
화려한 밤 문화... 아. 이런 게 나의 삶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수년간 둑을 쌓아온 방법은 '부정'이었다. 결국 그 둑이란 건 내가 게이임을 받아들인 순간부터 무너질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왜 그렇게 사냐고? 보통의 일반인으로서의 삶도 살면서
게이임을 즐기며 살면 안 되냐고?” 나는 그게 정말 안 된다. 그러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지금 난 모든 걸 부정하고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철저히 나를 버렸던 서른의 인생만큼 다시 남은 인생을 살 생각을 하니..숨이 막힌다.
나도 호흡이 가빠질 만큼 키스를 하고 싶다. 낮선 남자에게서 나는 살 냄새를 맡고 싶다. 소심한 나는 겁이 난다.
부모님, 친구들, 나 자신으로부터 멀리 도망가서 봉사나 하며 살까? 아님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갈까??
퀴어 영화 대사가 늘 머릿속에 맴돈다. “네 나이 때 하지 않아도 될 고민을 안고 산다는 건 힘든 일이지”
부풀어 버릴 데로 부푼 나의 머리 속은 늘 나에게 커다란 두통을 안겨준다. 나도 이젠 편하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