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NL-농경사회·PD-산업사회 패러다임…지금은 정보사회"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사회가 변하고 있는데 진보운동은 과거의 패러다임에 갇혀있다”며 “낙후된 패러다임으로는 멸종되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논객’ 생활을 접고 연구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진씨는 지난 24일 민주노동당 장애인위원회와 성소수자위원회가 주최한 ‘소수자 정치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석해 진보운동과 진보정당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양상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농경사회와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을 고집할 경우 몰락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진씨는 “근 10년 동안 논객으로 살다보니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해야 하는 생활이 지겨웠다”며 “지금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짚어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일체의 집필, 방송활동을 중단한 채 디지털 시대의 사회와 문화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NL은 농경사회, PD는 산업사회의 패러다임
진씨가 발제 내내 강조한 것은 ‘패러다임의 변화’. 그는 “지금은 패러다임 자체가 변하고 있다. 진보운동의 위기라고들 하는데 위기는 뭔가. 사회 자체가 변하고 있는데 진보가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미 정보사회에 진입했다. NL은 농경사회의 패러다임이고 PD는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이다. 사회는 이미 정보사회로 진입했는데 농경사회, 산업사회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으니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진씨는 “진보는 ‘텍스트’를 중시한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이 블로그, 미니홈피를 꾸미는 것을 보라. 문자 대신에 소리와 그림, 동영상으로 꾸미고 있지 않은가”라며 텍스트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중권씨는 ‘시간’에 대한 기존의 관념도 변화했다고 주장했다.
“진보는, ‘과거’는 피억압자의 기억을 조직해야 하는 것으로, ‘현재’는 미래를 위해 희생해야 할 어떤 것으로 보고 미래로 가자고 한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현재의 즐거운 시간들이 모여서 미래가 된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비가역적, 즉 되돌이킬 수 없다는 관념도 사라졌다. 영화, 드라마 못 본 것이 있어도 클릭 몇 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이다.“
"프로게이머들이 하고 있는 것이 미래 사회 블루칼라의 모습"
그는 정보화 사회의 계급구조의 변화에 대해 색다른 주장을 했다. 진씨는 “죄송한 말이지만 노동운동은 끝났다고 본다”며 “프로게이머들이 하고 있는 것이 미래 사회 블루칼라의 모습이고 화이트칼라는 프로그래머, 디자이너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제 농민 없는 진보운동, 노동자 없는 진보운동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며 “자발적으로 게임을 하는 정보프롤레타리아트가 새로운 계급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진씨는 진보정당의 활동에 대해 “‘저개발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의 양상에는 과개발의 정치와 저개발의 정치가 있다. 저개발의 정치는 목숨 걸고 하는 정치다. 서유럽 등의 과개발의 정치는 사회적 소통이 일정하게 해결된 상태에서 정치운동 자체가 유희가 되는 것으로 시위가 유희이고 퍼포먼스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양자가 다 있다. 한쪽에서는 쇠파이프, 화염병, 최루탄이 있지만 다른쪽에서는 열린우리당의 촛불집회가 있다. 시민들은 과개발의 정치를 선호하고 있다. 시민들에게 어필하는 코드를 읽어내야 한다.”
그는 따라서 진보가 비판을 제시하는 방식 자체가 창의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판을 제시하는 방향이 색다른 미학성, 예술성 가져야"
“지금은 이미지를 복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성하는 시대다. 진위라는 인식론적 기준이 아니라 얼마나 새로운가, 색다르고 발랄한가라는 미학적 기준이 중시된다. 요즘 하는 역사드라마를 보라. 고증 자체가 필요 없어지지 않았나.”
진씨는 “지금은 비판만 갖고는 안된다. 제시하는 방향이 색다른 미학성, 예술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얼마 전에 ‘논쟁이 돌아온다’라는 행사가 있어서 갔는데 30분도 못 앉아있겠더라.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다”며 “그래서 내가 ‘좌파 리사이클링’(재활용)이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진중권씨는 “디지털 시대 패러다임이 변했다. 새로운 방식, 창의성을 갖고 돌파해야지 이 상태로는 멸종한다. 우리 패러다임이 산업사회, 농경사회에 머물고 있는데 사람들이 보기에 얼마나 한심하겠나. 위기의식을 갖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2006년 11월 25일 (토) 12:55:59 윤재설 기자 yoonjs@redian.org
진보적인 가치들이 미학화되고 소비되는 '트렌드' 자체가 경제적, 정치적 갈등을 다른 쪽으로 선회해서 무정치, 무갈등한 자본의 지배 상태를 만드려는 것의 일환으로 생각되는데.
(아, 도저히 쉽게 써지지 않는군요.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