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수퍼맨은 게이인가
[동아일보 2006-07-06 05:05]
[동아일보]
영화 ‘수퍼맨 리턴즈’의 개봉을 전후해 ‘수퍼맨은 게이(남성 동성애자)’라는 도발적인 주장이 나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수퍼맨의 △곱상한 외모 △사랑의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속만 끓이는 모습 △자기 정체를 드러내지 못하는 정체성 고민을 근거로 들면서 미국의 게이잡지들이 “수퍼맨은 게이의 숨은 비유”라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게이라는 사실도 이런 주장에 설득력을 실어 주는 요소다.
기자는 ‘수퍼맨 리턴즈’를 보았다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이종헌 대표를 만났다. “게이로서 수퍼맨에 대해 친밀감을 느끼느냐”고 물었다.
이=아뇨. 전혀 동질감을 느끼지도, 그(수퍼맨)에게 끌리지도 않았어요. ‘레오타드(leotard·몸에 착 붙는 옷) 표면으로 드러나는 주연배우(브랜든 루스)의 성기가 너무 커서 컴퓨터그래픽(CG) 작업을 통해 작아 보이도록 했다’는 영화제작 뒷이야기가 얼마 전 게이 커뮤니티(모임)에서 흥미롭게 이야기된 적이 있었지만, 이것도 결국 영화 홍보를 위해 영화사 측이 흘린 얘기가 아닐까요?
기자=성기의 크기에 집착하는 건 게이적인 시각이라기보다는 반대로 마초(macho·사내다움을 강조하는)적인 시각 같은데요.
이=내 성기가 크기를 원한다면 마초적이겠죠. 하지만 이건 상대방의 성기가 컸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니까 차원이 다른 얘기 아닐까요?
기자=음, 게이들은 왜 슈퍼영웅을 좋아하나요?
이=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살다가 어떤 순간이 다가오면 영웅의 옷을 입고 뛰쳐나가 숨겨진 개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슈퍼영웅은 게이와 비슷해요. 게이들도 평일에는 남들과 똑같이 살다가 주말이 되면 게이 커뮤니티에 나와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니까요. 물론 배트맨처럼 레오타드 표면으로 근육질이 드러나는 슈퍼영웅을 게이가 더 좋아할 수 있겠죠.
기자=근육질을 좋아하시나요?
이=아유, 어떻게 모든 게이의 취향이 똑같겠어요. 요새는 수퍼맨이나 배트맨처럼 벌크(bulk·부피가 크다)한 근육보다 국내 배우 K 씨처럼 전체적으론 슬림(slim·호리호리한)하면서도 (근육이) 나오는 스타일을 좋아하죠.
기자=수퍼맨의 얼굴은 매력적인가요?
이=‘꽃미남’이더군요. 하지만 호감이 가지 않았어요. 왜 이마 한가운데 꼬랑지머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오히려 극중에서 수퍼맨이 사랑하는 여인인 루이스의 약혼자 리처드가 더 매력적이었어요. 약혼녀가 “수퍼맨을 살리러 가겠다”고 할 때도 그는 “수퍼맨을 진정 사랑했었느냐”고만 묻고는 그녀와 동행하잖아요? 다른 남자 같으면 “수퍼맨과는 어느 선까지 간 관계냐?”고 캐물으면서 괴롭혔을 법한데 말이죠. 가정적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거는 데다가 다른 남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리처드의 태도….
기자=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게이로서의 특징이 이 영화에도 들어 있다고 보시나요?
이=악당 렉스의 본거지인 배 내부에 계속 은은한 오페라가 깔리죠? 게이들이 오페라를 참 좋아해요. 사실 게이 입장에선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전 작품인 ‘엑스맨’이 훨씬 더 감동적이었어요. “왜 돌연변이로 계속 살려고 하느냐” “그걸(천성을) 바꿔 볼 생각을 하지 않느냐”는 가족에게 둘러싸여 괴로움을 겪는 돌연변이들의 모습에 저를 포함한 게이들은 깊은 연민을 느꼈어요.
기자=게이로서 가장 끌린 슈퍼영웅이 있다면….
이=단연 스파이더맨이죠. 그는 진짜 편한 친구 같아요. 동질감이 느껴져요.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기도 하고요.
기자=소시민적인 데다 결정적인 순간에도 과시적이기보다는 약간의 수줍음과 감성을 가진 남자 말이군요.
이=어떻게 그걸 다 느꼈어요? 스파이더맨으로서의 특출한 능력보다는 그 사람 자체…. 과시하지 않고, 부끄러움이 있고, 고민을 숨기고 있는 그런….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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