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이란에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교수형을 당한 두 소년.
지난 해에 이란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져서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혔는데, 이번엔 이라크에서 비보가 날아왔네요. 평택 때문에 마음이 안절부절 못하고, 비도 오고, 또 이런 소식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참 어수선합니다.
이라크 경찰, 14세 동성애자 즉결처형 파문
http://chingusai.net/bbs/zboard.php?id=temp&no=16
메인의 뉴스란에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지금 이라크는 호모포비아들과 전쟁을 치루고 있는 모양입니다. 시아파를 비롯,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설치고 다니는 탓에, 무방비 상태로 살해의 위협에 처해져 있는 거지요.
아이러니칼하게도, 미국의
공화당을 지지하는 보수적인 게이들의 단체를 비롯, 꽤 많은 미국의 보수적인 게이들은 당시 이라크 전쟁이 바로 이슬람으로부터 동성애자를 구하는 전쟁이라고 주장했었어요. 그런데 지금 어떻습니까? 난리가 아니지요. 아래글에도 적시했지만, (동성애자는 사형이라는 국법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통계에 의하면 90년대 이후부터 전쟁이 나기 전까지 이라크에서는 동성애자 사형이 한 건이 보고된 적이 없습니다.
헌데 왜 미국이 세운 민주 정부라는 체제 하에서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난 걸까요? 요컨대 이라크 전쟁 때문입니다. 후세인의 제거가 문제가 아니라, 후세인 제거 이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득세가 가져올 파장이 문제였던 거지요.
남의 나라 일로 치부하여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문제들은 충분히 잠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노무현 정부 이후, '보수주의의 커밍아웃' 이후 꽤 많은 한국의 게이들이 속속 자신의 정치색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입니다. 국가주의와 월드컵 이후 발호한 정체불명의 '대한민국주의'에 동시에 공명된 동성애자들 말입니다.
난감하네요. 여러가지 생각이 어지럽게 교차됩니다. 예전에 썼던 글, 다소 시기가 뒤떨어진 글이긴 하지만 혹여 도움이 될까 아래 올립니다. 예상이 맞아떨어지는 게 모두 기분 좋은 일은 아닐 겁니다. 우울.
미국은 이라크 호모를 도울 수 없다
2003/05/06
이라크를 침략하는 동안 부시는 한 손엔 총, 그리고 다른 한 손엔 성경을 들고 있다는 말을 즐겨 사용했다. 그에게 성경은 민주주의의 상징물이며, 이라크 전쟁이 이라크 여성들에게 해방을 가져다 줄 거라는 말을 거의 앵무새처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되뇌곤 했다.
헌데 이라크 침략을 지지하는 부유한, 멍청한, 권력적인 미국의 일부 게이들은 자신들이 '한 손엔 총, 다른 한 손엔 퀴어 인권 가이드'를 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말인즉슨, 이라크를 사담 후세인으로부터 해방시키면 동성애 발각 즉시 사형에 처하는 엄격한 이슬람 성 모랄로부터 '게이 일병 구하기'를 도모할 수 있을 거라는 거였다.
하지만 이는 대단한 착각이며 오만이다. 마치 사담 후세인을 지옥의 사탄과 동성애를 즐기는 혐오스러운 인간으로 묘사하는 영화 '사우스 파크'의 농담을 진담으로 이해하는 멍청한 관객들처럼 단순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이라크를 침략한 미군들을 이라크 민중들이 갈채를 보내며 환영할 거라고 순진하게 믿었던 것처럼, 미군이 이라크를 접수하면 동성애자들을 구출할 거라고 믿었다. 과연 그들이 몇 명이나 구출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당분간 이라크 사회에서 퀴어 인권에 관한 외침은 들리지 않게 될 것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에 강하게 견착되어 있던 시아파를 억압했던 사담 후세인 정권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세속적이었다. 이슬람에 관한 한 주변 여타 국가보다 비교적 세속적인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또한 이슬람에 위배되는 성적 범죄들, 매춘, 동성애, 간음 등에 대해서도 점점 느슨한 입장을 취해가고 있었다. 법률적으로 동성애는 사형이었지만, 90년대 이후 사형에 처해진 사례나 법률적 탄압에 관한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인권에 민감한 서구 사회의 옆구리를 찌르지 않으려는 술책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오일의 유로화를 기도했던 세속적인 후세인이 시민들의 섹슈얼리티를 종교적 율법으로 엄격히 관찰하고 통제할 만큼 사려 깊은 근본주의자가 아니었다는 점이 외려 더욱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허나 이라크 침략 전쟁이 끝난 지금 어떤가? 시아파를 근간으로 하는 이슬람 원리주의와 강력한 민족주의가 지금 이라크 땅에서 부흥하고 있지 않은가. 미국과 괴뢰정부는 앞으로 '공포와 충격' 보다 훨씬 더 장기적이고 힘든 싸움을 벌이게 될 것이며, 그럴수록 더욱 공고해지는 이슬람 원리주의는 당분간 이라크 민중들의 삶의 윤곽을 규정하는 유일한 토대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민족주의는 젠더의 각축장이다. 민족주의가 공고할수록 우리가 상상하거나 재현할 수 있는 젠더 다양화의 가능성은 그만큼 협소해지기 마련이다.
비록 마호메트가 레즈비언 존재를 언급하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쳐도, 이슬람 역사와 코란은 서구 기독교 역사에 비해 훨씬 더 관용적인 자세로 섹슈얼리티를 바라보았으며 일부다처제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리스크로써 여성들의 동성애에 대해 살짝 눈을 감아주기도 했었다. 또 인도 히즈라는 종교를 뛰어넘어, 자신들의 원형을 고대 이슬람 사원에 기생했던 '거세된 남성 하인'으로,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닌 그 이상야릇한 시종들로 설정하곤 했다.
이슬람 원리주의의 폐쇄성은 그 자체의 구동력에 의해서라기보단 서구 제국주의의 위협에 따른 것으로 보아야 한다. 지난 세기 아랍 지역 역시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였으며, 이슬람 원리주의에 기반한 강력한 민족주의의 태동은 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방어로부터 비롯되었다. 제 3세계의 민족주의 운동이 제국주의와 뗄래야 뗄 수 없는 함수관계에 놓여 있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여하간에 지금 이라크 재건 과정에 가장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는 시아파의 이슬람 원리주의와 공고한 민족주의는 이라크 여성들, 아동, 성적 소수자를 억압하는 기제를 끊임없이 양산할 것이다. 설령 미국이 세운 괴뢰 정부가 잔인한 폭력을 동원해 시아파를 억압한다고 해도 그들의 사정이 나아진다는 보장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가까운 실례로, 미국 괴뢰 정부가 장악하고 있는 파키스탄을 보라. 작년만 해도 461명의 여성들이 '명예살해' 이데올로기에 의해 목숨을 잃었으며, 살해 수치는 외려 점점 더 증가일로에 있는 형편이다.
이렇게 되든 저렇게 되든 미국이 이라크 호모들을 돕는다는 주장은 부시의 망상만큼이나 유치한 판타지에 불과하다. 이라크 민중들, 특히 여성들과 성적 소수자를 돕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은, 이라크 민중들의 자체적인 각성과 투쟁으로, 아울러 세계 시민 운동과의 연대를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진정 여성과 호모들, 그리고 레즈비언을 비롯한 다양한 성적 소수자들을 염려하다면, 부시 일당이여 지금 당장 보따리 싸들고 이라크를 떠나라. 그리고 그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그들 스스로 민주 국가를 만들 수 있도록 그대들이 파괴한 만큼 생계 수단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친구사이 국제행동대책위에서 단체로 면도날을 씹기로 했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