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위한 죽음 (Turks Fruit / Turkish Delight, 폴 바호벤, 1973)
재능 있는 감독이 헐리우드에 가서 무너지는 걸 보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충무로 상업영화판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겠지요. 폴 바호벤 감독 역시 이와 비슷한 경로를 밟는 사람일 겁니다.
'원초적 본능'과 '토탈 리콜'이 헐리우드 입성의 결과로 압축되지는 않습니다. 그는 지금 '할로우맨'이나 '스타쉽 트루퍼스'와 같은 졸작들을 만들어내는, 점점 잊혀져 가는 감독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쇼걸'이나 '스타쉽 트루퍼스'를 보며 에구구.... 어쩐댜... 하고 혀를 차는 건 물론 쉬운 일이겠지요.
네덜란드 출신의 폴 바호벤 감독의 진짜 영화적 재능은 초기작에 몰려 있습니다. 지금도 기억 속에 아련한, 호모섹슈얼리티를 오컬트 장르로 교묘히 끌어들인
'포스맨', 90년대 초반 힘들게 비디오를 구해서 봤던
'캐티 티벨'은 색다른 유럽 영화의 어떤 경향을 웅변해주는 좋은 작품들이지요. 닐 조단의 '모나리자'나 '두 번째 이별' 등의 숨은 걸작들과 맞먹는 기쁨을 주는 작품들. 그리고 오늘 본 그의 두 번째 장편 '사랑을 위한 죽음', 유럽영화의 '야만주의'의 첫 스타트를 끊은 작품이라는 찬사가 어울릴 만큼 참 잘 만든 영화네요.
로렌스 문학에서 연원하는 서사적 관능이 이 영화에 가득 담겨 있습니다, 70년대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터져버릴 것 같은 섹스에의 욕망, 나체로 거리를 질주하는 남녀의 이미지, 제목 '터키 과자'가 은유하는 것처럼 광기와 에로스가 뒤범벅된 힘 있는 이미지들이 영화 내내 흐르고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는 연인의 의상 컨셉은 모조리 베끼고 싶을 만큼 강렬한 원색 대비의 매력.
화가 출신의 남자와 부르조아 출신의 여성이 히치하이킹으로 만나 서로 격렬히 사랑하다가 헤어짐을 경유한 후 결국 여자가 죽는다는 내용입니다. 뇌종양에 걸려 여자가 죽는 마지막 씨퀀스가 무지 마음에 들지 않긴 하지만, 대체 롯거 하우어가 이런 젊은 시절과 이런 매력이 있었단 말인가(롯거 하우어의 성기는 원없이 구경한 듯), 할 정도로 그가 뿜어대는 카리스마 때문에 엔딩의 허접마저 가리워질 지경.
이 영화를 보면서 떠오르는 몇 개의 영화들. '베티 블루', 이번 부산에서 맛본 격렬한 영화 '추방된 사람들', '소년 소녀 만나다'.... 육체의 몸짓으로 부르조아 성 모럴에 저항하는 영화들은 대개 로렌스 문학에 빚을 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서도 빗 속을 벌거벗은 채 달려간다든지, 성기에 꽃을 꽂는다든지 하는 다소 상투적인 장면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 영화가 만들어진 시점을 봤을 때 참신하고 선구적이긴 합니다.
흠... 좋군요, 좋아. 답답한 소시민의 열적은 섹스 편력과 범박한 열정으로 일관하는 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영화.
2004-12-09
P.S
위에 언급한 토니 갓리프의 '추방된 사람들', 강추합니다. 곧 인디CGV를 통해 소규모로 개봉한다더군요. 부산영화제 때 봤는데, 작년에 건진 최대어 중의 하나. 개봉되면 한 번 더 봐야겠어요.
포스터 : http://imgmovie.naver.com/mdi/mi/0385/C8549-0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