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그이와 모처럼 극장에 갔지요.
이제 텔레비전으로 영화를 구매해서 보는 시대이지만, 누군가와 극장에 간다는 것은 좀 특별한 의미가
더해지는 것 같아요.
보길도 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세 명의 주인공의 이야기
그 시대때 만들어진 영화치곤 여전히 감성을 자극하는 그 무엇이 있네요.
남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갈망하고 원했던 삶의 여정은 너무나 엇갈리고 있네요.
세명의 감독들이 이야기를 통해서 드러내는 삶의 불안은 지금의 게이들의 불안과 여전히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이송희일 형의 작품이 좋았어요.
단편 소설 같은 영상과 인물들의 감정이 시적이었기 때문이에요.
남편이 남긴 유서를 통해서 자신의 남편이 동성애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이
가장 비참했을 진실은 "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어째서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고 그리워 했는가?"
" 왜 인생은 이렇게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게 없는 것일까" 이었을 것 같아요.
남편이 사랑한 사람이 내가 아니라 너 라는 순간을 확인하고, 무엇보다 너가 괜찮은 사람일 때, 왜 남편이 이 사람을
사랑할 수 밖에 없었는지, 나도 그 매력을 느낀다면, 그녀는 정말 서럽고 억울하고 그랬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탕웨이와 결혼한 감독이 퀴어배우로 나오는, 고무줄로 묶어 놓은 머리와 달달한 배드신, 어머 탕웨이와 머리 끄댕 이 잡고 전투라도 치루어야 하나.
그 배우 참 맘에 드네요.
텅빈 객석에 그이와 앉아서 마음 속 바람을 피웁니다.
이 영화 벌써 몇 번째인데, 볼 때마다 깊이가 달리 보이는 것은 세월이 제게 주는 선물인 것 같아요.
이제서야 온전히까지는 아닌데, 타인들을 보기 시작했다는, 참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요.
타인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 말이예요.
그래서 저는 나이 듦이 그렇게 비참하지도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물론 그이가 늘 내 옆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나를 사랑하는 힘으로 - 이 힘은 사실 친구사이와 지보이가 만들어 준 힘이고요- 타인을 돌보는 일에
용기를 내게 만들어 주었으니까요.
그리고, 이 영화를 어떻게 완성시켰는지 그 과정을 듣고나니, 예전 친구사이 언니/형들의 마음이 찡하게 느껴집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 나 만 봐줘" 라는 시대이었을 것이고, " 내 사랑이 니 사랑보다 중요했을 텐데", 오히려 더 그런 생활방식에 더 매달렸을 것 같은데요.
나 이외에 타인을 믿었고, 함께 살기 위해서 했던 실천들을 생각하면, 가슴에서 찡한 무엇이 올라오기도 해요.
아마도 그래야 우리가 생존할 수 있다는 본능에서 기인한 것 일 수도 있고요.
한편으로 불안의 증거이기도 하지만, 커뮤니티를 쌓아간 무수한 노력들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친구사이가 제작한 영화만으로도 사실 영화제를 할 수 있을 정도라는 사실을 회원들이 구지 알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그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십시일반으로 노력을 보탠 사람들이 현재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해요.
영화 보는 내내,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기울이면서 "내게는 늘 못마땅한 구석도 있던 언니/형들이" 참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활동가로 스스로를 칭하기보다 친구로서 불리어지기를 원했던 언니/형들의 그 마음이 참 좋아요.
5월 햇살 참 좋네요.
이러면서 사업 아이디어가 떠 오르는 것은 왜 일까? 나도 참 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