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평
외부성기 형성 요건만을 갖추지 못한 성전환자 성별정정에 대한
2013.11.19. 서울서부지방법원 허가결정 논평
“외부성기 형태만으로 사회적·법적 성별을 판단할 것이 아니라는 점을 체계적으로 밝히고, 이를 기반으로 기존 대법원 결정의 의의를 성전환자의 현실에 비추어 구체화한 결정으로 우리나라 성전환자들의 인권을 한 발자국 신장시킨 중요한 판례”
“성별정정을 담보로 외부성기 성형을 포함한 외과적 조치를 강요하는 것은 헌법상 기본권 침해라는 점이 지속적으로 강조되어야 할 것”
1. 2013년 11월 19일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외부성기 형성 요건만을 갖추지 못한 여성에서 남성으로의 성전환자에 대하여 가족관계등록부상 남성으로 성별정정을 허가하였다. 동 법원은 2013년 3월 15일 본 사건과 동일한 요건의 성전환자 5인에 대해 성별정정을 허가하였으나 그 결정이유를 밝히지는 아니하였다. 또한 그 이후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등에서 동일한 결정이 이어졌으나 마찬가지로 결정이유가 언급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이번 서울서부지방법원의 결정은 외부성기성형 요건을 갖추지 않은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허가 이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에 큰 의의가 있다.
2. 본 사건 결정은 외부성기 형성 요구의 위헌성과 대법원 결정 및 현행 대법원 예규의 해석을 중심으로 그 결정이유를 밝히고 있다.
먼저 여성에서 남성으로의 성전환자에 대한 의료적 조치의 과정을 상세하게 조사하여 외부성기 형성이 의료적으로 필수적인 과정이 아닌 반면 의료기술 상의 한계와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 고액의 수술비용에 비해 경제적 궁핍과 열악한 사회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을 밝혔다. 그리고 외부성기 형성 이전 단계로 이루어지는 각종 의료적 조치를 통하여 이미 정체성을 비롯한 신체외관상·사회생활상 남성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부성기 형성이 신청인의 성별정체성 확인 및 신분관계의 안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한편, 신분관계의 변동은 신분관계 자체에서 결정되는 것이지 외부성기 여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 사회관계상 성별을 판단하는 기준이 외부성기를 가졌는지 여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 등을 통해 외부성기 형성을 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신분관계의 중대한 변동이나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보았다.
다음으로, 2006년 및 2011년 성전환자 성별정정에 대한 대법원 결정과 대법원 예규인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 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의 취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이들이 외부성기 형성만을 하지 않고 있는 여성에서 남성으로의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을 불허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확실히 하였다.
이상의 취지는 2013년 3월 15일 동 법원 결정의 사건을 기획신청한 본 연구회의 서면 상 주장을 일정 부분 수용하였다고 보인다.
3. 본 결정은 성전환수술이 일의적이지 않으며 외부성기 형태만으로 사회적·법적 성별을 판단할 것이 아니라는 점을 체계적으로 밝힌 점, 이를 기반으로 기존 대법원 결정의 의의를 성전환자의 현실에 비추어 구체화한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것이다. 나아가 외부성기 성형을 하지 못하거나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성별정정을 신청하지 못하고 있던 대부분의 여성에서 남성으로의 성전환자의 인권 신장에 큰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다.
4. 다만,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이번 결정의 보완점을 언급할 필요성이 있다.
첫째, 외부성기 성형을 할 것인가에 대한 성전환자 당사자의 선택은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및 성별정체성에 따른 삶을 영위할 자기결정권에 기하여 보호되는 헌법적 권리이다. 이와 같은 기본권의 제한의 한계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의료적 위험성과 경제적 부담이 하나의 근거 요소가 될 수 있다. 아쉽게도 본 결정문에서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및 행복추구권(헌법 제10조 제1항, 제34조 제1항)’을 언급하는 데에 그치고, 기본권 침해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의료적 위험성과 경제적 부담에 상당부분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료보험이 적용되거나 의료기술이 발달하였다고 외부성기 성형 요구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헌법상 정당한 권리로서의 측면에 방점이 찍힐 필요가 있다.
둘째, 이러한 측면에서 본 결정의 취지는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성전환자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여성으로서 사회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면서 남성 생식능력도 제거한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성전환자에 대해서 역시 신분증상 성별과 다른 성별을 살도록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즉, 성전환남성(여성에서 남성으로의 성전환자)과 성전환여성(남성에서 여성으로의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신청에 대하여, 양자를 다른 것으로 판단하여 다르게 취급해야 할 합리적이고 정당한 근거가 없다.
셋째, 결정취지에서 언급하고 있는 해외 사례는 다소 오해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2011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생식능력 제거 요건과 외부성징변형 요건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성기를 변형하는 성전환수술’에 대한 위헌성 판단이라고만 표현하는 경우 본 결정과 유사한 결론을 도출한 것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 결정문에서 인용하고 있는 유럽국가들 역시 성별변경 요건으로 생식능력 제거를 요구하지 않는 제·개정이 단행되고 있다. 즉, 통상 정신과 진단, 또는 나아가 사회생활상의 성별을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외과적 조치는 요구하지 않는 것이 해외각국의 추세라는 점에서, 생식능력 제거 요건을 다루지 않고 당연하게 전제하고 있는 우리나라 대법원 및 본 결정에 비해 훨씬 완화된 기준으로의 변화라는 점을 밝혀둔다.
5. 본 결정은 별론으로 하고, 궁극적으로 성별정정에 있어서 성전환자의 기본권이 온전히 실현되기 위해서는 미성년자 자녀 요건은 물론이고 생식능력 제거 요건 역시 치열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정신과 진단 요건에 대한 의문점도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즉, 법적 성별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성전환자의 의료적 조치의 정도와 여부를 중요한 요소로 다루고 있는 근원에는 일련의 생물학적 요소들-성별정체성-성별표현-성역할이 두 개의 성별 중 하나에 일관되게 나타나고, 또 그래야 한다는 성별이분법적 관념이 존재하며, 이것이 현대 의학과 결부되어 성전환증이라는 병리적 관점이 탄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6. 본 결정은 이미 자신의 성별정체성에 따라 사회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나 정작 법적인 성별 변경이 되지 않아서 고통 받는 우리나라 성전환자들의 인권을 한 발자국 신장시킨 중요한 판례로 남을 것이다. 이번 결정이 퇴색되지 않고 계속적으로 다른 지방법원의 허가결정으로 이어지면서, 나아가서는 대법원 예규와 입법으로 연결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2013. 11. 22.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