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2월, 로마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유엔이 정한 ‘가정의 해’를 맞아 사도서신 ‘가정에 보내는 편지’를 발표했다. 이 서신에서 교황은 ‘오늘날 비정상적인 가정생활을 정상적이고 매력있는 모습으로 표현하는 여러가지 조직에 의해 가정은 밑바탕에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며 ‘결혼을 통한 인간가치의 발견, 부모가 됨으로써 느낄 수 있는 자식에 대한 사랑, 출산과 자녀교육의 위대함 등이 위협받고 있는 오늘날의 문화는 병든 문화’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같은 로마 교황청의 지침은 세계 도처에서 도전받고 있다. 2001년 동성(同性)간 결혼을 합법화한 네덜란드가 대표적인 경우다. 네덜란드의 동성애 단체는 이 여세를 몰아 다른 나라들도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법에 대항해 법적투쟁을 벌일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노동당의 한 의원은 동성애자의 권리쟁취는 단순한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평등권을 향한 정치적 투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해 6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57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뮤지컬 ‘헤어 스프레이’를 작사 작곡한 마크 세이먼과 스코트 위트먼이 무대 위에서 키스를 나누었다. 그리고 세이먼은 ‘우리는 결혼할 수는 없지만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이 평생 변치 않을 것임을 만인 앞에서 선언한다’고 외쳤다. 이들 두 남자는 작사 작곡의 파트너이자 사랑의 동반자였다. 이날은 뉴햄프셔주의 한 감독교단이 사상 최초로 동성애 신부를 주교로 선출한 이튿날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합법적으로 결혼할 날도 그리 멀지 않을 것 같다. 지난해 11월18일, 주 헌법에 따라 동성애자에게도 법적으로 결혼할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던 매사추세츠주 대법원이 이번엔 동성부부를 이성부부와 차별하지 말라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즉각 결혼의 신성함을 수호하기 위해 법적 절차를 밟겠다고 선언했지만 동성부부를 합법화하라는 요구는 날로 거세지고 있다. 동성간 결혼도 선진화인지는 몰라도 가족의 가치를 섬겨온 동방예의지국의 장삼이사(張三李四)들로선 바다 건너쪽의 그런 소동에 그저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이광훈 논설고문 kh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