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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사설/칼럼 등록 2003.11.10(월) 21:47

‘동성결혼’ 패륜인가 문화인가


△ 미국에서 동성 결혼 허용 여부가 커다란 사회적 논쟁으로 부각되고 있다. 5살짜리 믹구 소녀가 지난 6월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의사당 앞에서 자신의 엄마(가운데), 엄마의 파트너와 함께 동성 결혼을 지지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솔트레이크시티/AP 연합

미국 콜로라도주의 콜로라도 스프링스엔 81에이커 크기의 거대한 복음주의단체 본부가 있다. 전통적인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는, 미국내 최대 기독교단체 가운데 하나인 ‘포커스 온더 패밀리’의 본부다. 지난 8월 성공회의 동성애자 주교 인준 직후, 이 단체는 최우선 활동목표를 ‘동성결혼 저지’로 정했다. 이곳에선 요즘 매달 150만통의 편지를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보내고 있다. 이 단체의 고위간부인 글렌 스탠턴은 “우리 단체의 25년 역사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이슈는 없었다”며 낙태보다 이 문제가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동성결혼’은 올해 미국의 가장 큰 사회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오랫동안 물밑에서 머물던 이 문제는 6월 미 연방대법원의 안티-소도미법(동성애 금지법) 위헌 결정을 계기로 물 위로 솟구쳐 올랐다. 8월에 성공회가 사상 처음으로 동성애자인 진 로빈슨 신부를 주교로 임명하면서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동성애가 미국 사회에서 논란이 된 건 어제오늘이 아니다. 이런 논란을 거치며 동성애는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동성결혼은 또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 같다. 보수진영은 더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마지막 선을 동성결혼 저지로 삼고 있다.

이미 사회 곳곳에서 동성결혼에 대한 터부가 사라지는 모습은 목격된다. 미국에서 결혼전문잡지로선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신부>는 9, 10월호에 동성결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특집을 실었다. 법적으로도 동성결혼 불인정에 대한 헌법소원이 각 주 대법원에 계속 제기되고 있다. ‘결혼이란 남녀가 결합하는 것’이라는 법적 보루가 무너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지 모른다. 최근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한 보수 진영이 ‘동성결혼’ 문제를 정치쟁점화하며 총공세를 펴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이 논쟁의 논점은 분명하다. 반대론자들은 “결혼이란 남녀가 하나의 가족을 이루는 신성한 제도다. 동성결혼은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창조했다는 창조론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글랜 스탠턴은 “오직 이성 부부만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모든 걸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찬성론자들은 최근의 몇몇 연구결과를 내놓으며 “동성 부부도 입양한 아이들에게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줄 수 있다”고 반박한다. 미시간대에서 ‘동성애자가 되는 법’이란 과목을 개설한 데이비드 핼프런 교수는 “동성애란 성적 욕망이 아니라 일종의 문화적 형태일 뿐”이라고 말했다.

미국민들의 의견은 아직 부정적이다. 성공회의 동성애 주교 인준 이후 오히려 동성결혼 지지율이 하락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여론 추이를 보면, 과거에 비해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비율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또 동성결혼 자체보다는, 동성 부부에게도 이성 부부와 똑같은 법적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시빌 유니언)에 대한 지지도가 좀더 높다.

매사추세츠주 대법원은 이르면 이달 중에 시빌 유니언을 인정할지에 대한 결정을 내린다. 현재 시빌 유니언을 인정하는 주는 미 전역에서 버몬트주가 유일하다. 매사추세츠주의 결정은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주들에 큰 영향을 끼치며, ‘문화전쟁’을 재점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망했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미 대선 부동표 출렁이게 할 변수

공화당 선거전략가들은 동성 결혼 문제를 내년 대선의 주요 쟁점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행동에 이미 나섰다. 일부는 이 사안을 “중도성향 유권자들의 표를 확 끌어올 수 있는 금광과 같다”고 말한다.

이 문제에 대한 대선 후보들의 견해는 당적은 물론이고 개인적 성향에 따라 어느 정도 분명하게 갈린다. 공화당의 유일한 후보인 조지 부시 대통령은 지난 7월 “(연방정부 차원에서) 동성 결혼을 막을 법적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반대 뜻을 밝혔다. 다만 이 문제를 계속 거론하는 게 강경보수 이미지를 덧칠하지 않을까 부시 진영은 고민하고 있다.

민주당 경선후보 가운데선 존 케리 상원의원과 웨슬리 클라크 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군사령관이 ‘시빌 유니언’에 찬성하고 있다. 하워드 딘 전 버몬트주 지사는 지사 재직 시절 미국에선 처음으로 시빌 유니언을 허용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그러나 이들 모두 동성 결혼 자체에 대해선 분명한 찬반 의견을 표시하지 않고 있다.

조지프 리버먼 상원의원과 존 에드워드 상원의원은 동성 결혼엔 반대하지만, 시빌 유니언은 검토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 후보 중 분명하게 동성 결혼에 찬성하는 이는 데니스 쿠치니치 하원의원과 흑인 민권운동가인 알 샤프론 목사, 흑인으로 여성 상원의원을 지낸 캐럴 모즐리 브라운 등 3명뿐이다.

동성 결혼 문제에 리처드 게파트 하원의원만큼 절실한 이해관계를 가진 이도 드물다. 그의 딸 크리시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이다. 크리시는 아버지의 선거운동을 열성적으로 돕고 있다. 그러나 게파트는 동성애자단체 초청 토론회에서 “시빌 유니언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동성 결혼엔 반대한다”고 밝혔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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