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03-05-26 (정보통신/과학) 기획.연재 61면 05판 1053자
김종성교수의 뇌의 신비 / 남동성애자 시상하부 여자의 것과 구조 차이없어
‘어쩔 수 없는 사랑’이란 주제가 우리의 심금을 울렸던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고교 교사인 서인우는 동성애자의 누명을 쓴다.
학생들은 칠판 가득 ‘AIDS’를 쓰고 콘돔 모양의 풍선을 서인우를 향해 날린다. 결국 그는 학교에서 쫓겨나고 만다. 우리나라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심한가를 웅변하는 장면이다.
서양의 통계에 따르면 동성애자는 전체 인구의 5∼10%, 양성애자는 20∼30%를 차지한다. 동성애자는 남자가 여자보다 두 배 정도 더 많지만 양성애자는 여자에게 좀 더 많은 경향이 있다.
보통 사람과 동성애자의 뇌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리 뇌의 정중앙 아래쪽에 있는 시상하부는 몸의 여러 내분비 기관을 총괄하는 중추이다.
1989년 UCLA의 알렌 교수 팀, 그리고 1991년 소크 연구소의 르베이 박사 팀은 각각 인간의 시상하부에 존재하는 일련의 신경세포 다발 중 INAH2와 INAH3라 불리는 구조의 크기가 남자가 여자보다 두 배 정도 크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물론 이것은 보통 사람의 경우이며 남자 동성애자의 경우는 여자의 것과 차이가 없었다. 따라서 INAH2나 INAH3는 인간의 성적 취향을 결정하는 부분이 아닐까 추측된다.
이러한 구조적 차이가 초래되는 원인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 아마도 태아가 자궁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어느 중요한 시점에 (아마도 시상하부가 성숙하기 시작할 무렵일 것이다) 어머니의 혈중 호르몬 농도에 의해 시상하부의 신경세포에 변화가 초래되며, 이러한 변화가 아기의 성적 경향을 결정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한편 동성애 기질과 관계있는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유전설’도 있다. 예컨대 미국 국립보건원의 해머 박사 팀은 X 염색체의 긴 팔 끝에 있는 일부 유전자의 변이가 남자 동성애자에게 많다는 사실을 밝혔다. 원인이야 어쨌든 동성애자도 동성인 사람을 선호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런 육체적, 정신적 결함이 없는 정상인이다.
최근 자살한 홍콩 배우 장궈룽은 동성애자였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많은 팬들은 그를 애도했다.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이 줄어드는 신호인 것 같아 반갑다.
김종성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