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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청소년 동성애자의 죽음 - [한 겨 레] 2003-05-01 () 12면 1436자  


4월26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19살 동성애자의 죽음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나 또한 그와 같이 청소년이자 고교 자퇴생, 남성 동성애자인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과 사회의 멸시 어린 시선에 상처받았을 그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저려온다.

현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에는 동성애가 수간, 혼음, 근친상간 등과 함께 청소년 유해매체물 심의기준으로 제시돼 있다. 지난 4월2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청소년 유해매체물의 심의기준에서 동성애를 삭제하라고 권고했다. 다음날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인권위의 권고를 받아들여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규정을 개정할 계획을 발표했다. 이 조항의 삭제를 위해 노력해온 성적소수자 인권운동 단체들은 인권위와 청보위의 결정에 환영 성명서를 냈다. 그러나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반대성명을 통해 동성애자를 반인륜적 죄인으로 몰았고, <국민일보>는 연일 기사를 통해 동성애자를 비정상으로 낙인찍었다. 그들은 청소년 시기에는 지나친 성적 호기심으로 동성애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청소년들의 동성애 표현물 접근을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교적 편견과 독선으로 가득 찬 이들의 주장은 어쩌면 한국 사회가 청소년 동성애자를 보는 지배적인 시각일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근거 없는 동성애혐오증(호모포비아) 탓에 한국의 청소년 동성애자들은 이중으로 고통받고 있다. 첫째는 동성애자로서의 성정체성 때문이고 둘째는 ‘미성숙한’ 청소년이기 때문이다. 이성애만이 정상이고, 동성애는 비정상이라는 낙인은 학교교육에서 출발한다. 학교교육은 동성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는커녕 비정상이라고 가르친다. 이런 교육의 영향으로 청소년 동성애자들은 성정체성을 긍정하기 전에 자신이 동성애자임에 괴로워하고 수치스러워한다. 그의 유언장에는 ‘동성애자로 태어난 걸 후회하기도 했고, 이 나라가 싫고 이 세상이 싫다’는 구절이 쓰여 있다.

그의 죽음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의 모든 청소년 동성애자의 삶 속에는 항상 죽음의 유혹이 들어 있다. 그를 죽인 것은 우리 안의 호모포비아이고, 편견이 불러온 폭력과 억압이다. 특히 청소년 동성애자들의 존재조차 부정하는 보수 언론과 기독교 단체의 폭력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가 자살 장소로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청소년 동성애자들의 현실을 죽음으로 고발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극단의 선택이 아니고서는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힘 없는 소수자의 쓸쓸한 삶과 죽음을.

우리는 또다시 이 순간, 동성애자인권운동의 오래된 명제 ‘침묵은 죽음이고, 행동만이 삶이다’를 가슴 깊이 되새긴다. 동성애자들은, 청소년들은, 목숨을 내던져 이 사회를 고발한 그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바랐듯 ‘강자도 약자도 없는 그런 천국’에서 동성이든 이성이든 사랑을 차별하지 않는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기를 기도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겸/청소년 동성애자·자퇴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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