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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동성애자 친목 사이트 회원인 20대 중반의 L씨는 같은 사이트에서 활동하던 B씨(25)로부터 “동성애자임을 주변에 알리겠다”고 협박당해    1년간 200만원을 뜯겨야 했다. L씨뿐 아니라 같은 동호회 소속 30여명의 회원이 같은 방법으로 수차례에 걸쳐 1인당 적게는 20여만원에서, 많게는 500만원까지 B씨에게 돈을 빼앗겼다. 피해를 당한 이들은 B씨를 법적으로 처벌하길 원했지만 조사 과정에서 자신들의 성 정체성이 드러나는 게 두려워 사건을 덮어두기로 했다.

여대생 A씨는 “부모에게 동성애자임을 알리겠다”고 협박하는 같은 학교의 남자선배로부터 1년간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 A씨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주변에 알려질 경우 벌어질 상황이 두려웠기 때문에 자신을 괴롭히는 남자선배를 경찰에 고발하지도 못하고 동성애자 인권단체에 상담을 의뢰했다.

‘아웃팅(outing)’을 빌미로 동성애자들을 협박하는 범죄가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을 보호해줄 만한 사회적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아 이들은 마땅히 호소할 곳도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아웃팅’이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타인에 의해 성 정체성이 밝혀지는 것으로, 자신이 스스로 성 정체성을 밝히는 ‘커밍아웃(comingout)’과는 다른 개념이다. 보통사람들과 다른 성적 취향을 가졌다는 ‘약점’ 때문에 동성애자들은 부당한 일을 당하면서도 법적 대응조차 하지 못하는 이중고를 겪는 것이다.

타인에 의해 생존까지 위협

아직 자신의 성 정체성을 주변에 드러내지 않은 동성애자들은 ‘아웃팅’ 공포에 일상적으로 시달린다. 한국여성 성적 소수자의 모임 ‘끼리끼리’(kirikiri.org) 홈페이지의 ‘아웃팅 피해 사례’ 게시판에 ‘이반’이란 아이디로 글을 올린 한 여대생은 “친한 친구의 남자친구가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과 친구들에게 알릴까봐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동성애자임이 알려지면 주위로부터 배척당할 것’이란 막연한 불안감이 동성애자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끼리끼리’는 ‘아웃팅’ 위협에 시달리는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3월15일부터 ‘아웃팅 방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끼리끼리’의 박수진 간사(29)는 “아웃팅의 피해가 가시화하고 있는 이상 문제를 공론화하는 작업이 절실하다고 생각했다”며 “동성애자들의 피해 사례를 모아 대외적으로 아웃팅의 위험성을 알리는 일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아웃팅’이 악의에서 비롯됐건,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서 비롯됐건 간에 당사자의 생존까지 위협할 만큼 위험하다는 데 주목한다.

‘아웃팅’의 대표적인 피해자는 스포츠신문에 의해 동성애자임이 밝혀져 방송국으로부터 ‘퇴출당한’ 홍석천씨다. 그는 한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오프 더 레코드’(보도하지 않는다는 약속 하에 진실을 말하는 것)로 밝힌 사실이 스포츠신문에 먼저 보도돼 ‘강제적’으로 커밍아웃하고 말았다. 이후 그는 실직과 주위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모진 맘 고생을 해야 했다.

회사원 김모씨(25·여)는 최근 직장을 그만둬야만 했던 경우. 김씨는 동성애자 인권단체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다음날 동료들의 눈길이 달라진 것을 느꼈다. 이메일을 확인한 후에야 그는 그 이유를 깨달았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메일을 도용해 회사 직원 모두에게 자신이 홈페이지에 남긴 글을 보냈기 때문이다. 동성애자임이 알려진 김씨는 주변의 따가운 눈총과 비아냥을 견디다 못해 결국 사표를 냈다. 홍씨와 김씨의 경우처럼 ‘아웃팅’은 ‘생존권 박탈’과 직결될 수 있다.   


‘아웃팅’이 동성애자들에게 위협적인 이유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편견이 심한 우리 사회의 풍토와 무관치 않다. 박수진 간사는 “서구 사회에는 ‘아웃팅 방지 캠페인’이 따로 필요 없을 만큼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혀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고 지적한다. 반면 한국의 동성애자는 ‘커밍아웃’하는 순간 자신의 가족, 학교, 회사로부터 철저히 격리되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자신의 당연한 ‘권리’도 누리지 못하는 경우마저 있다. 동성애자 인권연대 고승우 사무처장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주위사람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한 30대 남성이 경찰서를 찾았지만 경찰들은 그의 호소를 듣기는커녕 야릇한 냉소만을 보냈다”고 상담 사례를 소개했다. 이 남성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경찰들로부터 “너는 남자 역할을 하냐, 여자 역할을 하냐”는 식의 ‘치욕스러운’ 질문을 받아야 했다. 그는 경찰들이 사건 자체보다 동성애자인 자신의 특수한 처지에만 말초적 관심을 갖는 것을 보며 씁쓸함을 맛봐야 했다.


고 사무처장은 “동성애자들이 경찰에서 자신이 당한 어려움을 호소할 수조차 없는 분위기가 아웃팅 관련 범죄를 쉽게 공론화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성적 소수자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마인드를 갖추도록 하는 경찰에 대한 교육도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김은미 사무관은 “경찰 수사 절차상의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포괄적인 교육은 시행하고 있으나 아직 ‘성적 소수자의 인권침해 방지’에 대한 구체적 교육 프로그램은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인권위에서 4월2일 동성애사이트가 청소년유해매체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린 만큼 ‘성적 소수자’와 관련된 인권교육 문제도 함께 고민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변보장 위한 법안 마련 시급”


아웃팅 위협에 대해 구제를 받고 싶어도 법적인 ‘제약’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웃팅 위협을 받으며 성폭행당한 여성을 상담한 한국 성폭력상담소 이덕화 간사는 “동성애자가 당한 피해에 대해 법적으로 대응할 방법을 찾아봤지만 ‘커밍아웃’을 하지 않고 소송을 진행하기는 불가능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정신적으로 상처받은 피해자를 상담해주는 것 외에는 도와줄 방법이 없어 아쉬웠다”면서 “동성애자들의 신변보장을 위한 법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지평의 이은우 변호사는 ‘성적 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아니한다’는 인권위 법 30조 2항을 들어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항거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동성애자들이 아웃팅 위협을 받는 것은 법적 근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동성애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사회적 풍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동성애자가 법적 소송을 제기할 때 그들의 신변이 노출되지 않도록 배려함으로써 그들이 겪은 부당함에 적극적으로 맞서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민사소송을 제기할 때 소송 당사자가 익명을 원하면 언론과 경찰에서 확실하게 신변을 보호해준다고 한다.


이렇듯 동성애자들의 인권보장에 대한 목소리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으나 ‘아웃팅 방지 캠페인’의 갈 길은 멀다. ‘끼리끼리’의 박수진 간사는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밝히기를 꺼려해 피해 사례를 수치화하기 어려운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끼리끼리’측은 ‘아웃팅’으로 인해 동성애자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그 심각성을 알리고, 피해 사례를 정리해 구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으나 아직 캠페인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한 실정이다.


박간사는 “‘누가 동성애자더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분위기가 동성애자에게는 치명적인 ‘아웃팅’이 된다”면서 “동성애자에게는 아웃팅이 생존권 박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사회의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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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