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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호][칼럼] 남들 사이의 터울 #2 : 운동의 원칙
2022-11-30 오후 15: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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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11월 

 

[칼럼] 남들 사이의 터울 #2

: 운동의 원칙

 

 


성소수자를 상대로 성정체성을 바꾸려는 목적의 '전환 치료(conversion therapy)'라는 행위가 있다. 동성애와 트랜스젠더가 명실공히 정신장애이던 시절에 만들어져, 그것들이 더 이상 정신장애가 아니게 된 현재에도 세계 곳곳에서 '치료'를 빙자한 폭력들이 발생하고 있고, 한국 또한 예외는 아니다. 2021년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에서 조사한, 탈가정 경험이 있거나 이를 진지하게 고민해본 153명의 청소년 성소수자들 중, 전체의 10%에 해당하는 17명의 당사자가 원가정으로부터 전환치료나 그를 시도하는 형태의 폭력을 경험했다. 2015년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정체화한 한 20대 당사자는, 실제로 개신교 종교시설에서 총 4차례 언어적·신체적 폭력이 동원된 '전환치료'를 받고 그곳을 탈출했다. 

 

이렇게 애초에 치료할 대상이 아닌 것을 '치료'라 명명하여 사람을 가두는 형태의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성소수자들이 겪는 억압이 흔히 그렇듯이 비단 성소수자에게만 가해진 것은 아니다.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성매매여성을 대상으로 시설에 격리수용해 재활교육한다는 명목의 "교정 치료(reformative treatment)"가 실시되었다. 그들이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라는 이유에서였다. 성매매여성과 성소수자를 '치료'의 대상으로 놓는 것은 곧, 그들에게 가해지는 낙인과 억압을 온전히 그들 당사자의 탓으로 보고 그 '원인'을 '고치겠다'는 것을 의미했다. 더불어 이러한 '치료'의 발상은 '시설'과 '격리수용'에서 연상되듯이, 의외로 과거 사회복지 일반의 개념 가운데 태연히 자리하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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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대상은 가급적 넓을수록 좋을 수 있다. 가령 1961년 한국에 아동복리법이 처음 제정됐을 때, 이 법의 적용 대상은 '요보호아동'이었다. 요보호(dependency)란 어딘가 지원이 필요한 것 같은 방대한 사례들을 두루 포함하는 말이다. 그리고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사법에 복지의 개념을 넣어, 사회를 위협하는 존재들을 '돌보고' '치료하자'는 이념이 대두됐다. 사회의 위협 중 하나로 간주된 '소년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 미국의 소년법원이고, 이 제도가 한국에 소개될 때 이 법원의 관할 대상으로 번역된 용어가 바로 '요보호소년'이다.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1942년 조선총독부가 범죄를 일으킬 '우려가 있는' 소년, 즉 '우범소년'에 대한 보호처분 규정을 조선소년령에 못박아두었다. 여기에 1958년 소년법이 제정되면서 이 '우범소년' 규정은 앞서 언급한 미국 소년법원의 예를 근거로 다시금 정당화되었다. 범죄를 일으킬 '개연성'만으로 누구를 어디에 집어넣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그렇게 거듭 만들어지고 갱신되었다. 

 

대상이 아무쪼록 넓으면 좋을 수 있겠을 사회복지와는 달리, 형사처벌, 또는 처벌과 다름없는 조치의 경우는 그와 반대로 그 대상과 절차를 명확하고 엄정하게 정하는 편이 타당하다. 그 원칙이 무너졌을 때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억압은, 품어 살핀다는 뜻의 '보호', 가르친다는 뜻의 '보도', 병을 낫게 한다는 뜻의 '치료' 등 사회복지의 언어를 통해 법적으로 정당화되었다. 소년법에 명시된 '우범소년'에 대한 보호처분 외에도, 국가보안법상의 '보도구금'과 찬양고무죄가 그러했고, 성매매여성에 대한 윤락행위등방지법상의 '보호지도'가 그러했다. 뭔가를 '할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잡아가둘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것들은 모두 한 배에서 나온 발상이었다. 

 

사회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시설에서 벌어진 광범위한 인권침해 중 하나가 바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2기는 이 사건을 진상규명 사건 1호로 지정했다. 실제 범죄 사실에 대한 증거도 없이 거리를 부랑아처럼 활보했다는 이유만으로 시설에 잡아가둔 채 온갖 구타와 폭언을 일삼은 일이 그 시절 '사회복지'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이었다. 그곳에서 지옥같은 몇년을 보낸 피해당사자들 중 많은 수는 지금도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우범소년'에 대한 '보호처분'를 위해 만들어진 감화원 중 한 곳인 선감학원 터에서는, 2022년 9월 발굴굴 시작 하루만에 암매장된 아이의 유골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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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세상에는 좋은 사회복지가 있고 나쁜 사회복지가 있다. 사회복지는 일제 강점기부터 '사회사업'이란 이름으로 많은 이들의 손을 거쳐 실행되었고, 정부 외에도 많은 외원 단체와 육영사업가들이 이 사업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거기에는 다양한 주체와 층위의 이해관계가 개입되었다. 그네들 모두가 지난날 선감학원과 형제복지원의 예처럼 폭력을 행사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가공할 폭력이 사회복지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다면, 그것을 나쁜 사회복지의 극단적인 사례로 한곳에 밀어놓는 것이 아니라,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를 사회복지 일반의 개념에 비추어 그것을 끝없이 경계하는 거울로 삼아야 함이 마땅하다. 

 

2001년 한국에 여성부가 세워지기 전, 여성부의 관할 업무는 보건복지부 부녀과에서 관장했다. 그에 따라 여성부는 관련 사업의 대상과 성과의 기준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사회복지의 문법과 준칙을 크게 참조했다. 나아가 여성운동에 대한 정부 지원이 확충되는 과정에서, 사업의 양적 성과 지표가 현장의 구체적인 사정과는 동떨어진 형태로 기계적으로 적용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였고, 여러 단체들이 운동의 근본적인 방향과 정부 지원에 따른 재정적 실리 사이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에 여성운동계에서는 이러한 운동의 제도화 문제에 대한 논의를 일찍부터 전개해왔다. 정부 재원이라고는 HIV 예방 외에 거의 전무한 한국의 퀴어판에서는 아직 이른 논의일 수 있지만, 언젠가 이쪽 바닥에도 포괄적 차별금지법 등을 근거로 정부 지원이 투하될 날이 있을 것이고, 그랬을 때 이 문제 또한 분명 깊이 논의될 날이 있을 것이다. 

 

사회복지의 자원과 방법론은 사회운동이 협상해나갈 중요한 대상이다. 그 협상에 임할 때 주의할 것은 다음 두 가지다. 첫째는 둘 사이를 애초에 영영 떨어뜨려놓는 것이다. 정부 지원을 받기만 해도 정부에 부역했다고 손가락질하던 운동 초기의 일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정부 예산 또한 운동이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요령껏 취사선택할 수 있어야 할 대상이고, 그것을 받아안았을 때의 이익과 함정을 판단할 경륜을 운동은 갖추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둘째는 그 둘이 애초에 서로 같다고 단정하는 것이다. 둘다 좋은 일 하겠다는데 비슷한 것 아닌가 싶을 수 있고, 운동의 실무에서 사용될 기술적인 부분에서 둘이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사회복지와 사회운동의 원칙은 어떤 경우에도 서로 같아질 수 없다. 그 사회복지의 허울좋은 기술과 시설들로 사람이 다친 과거와 현재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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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대상 전환치료는 성소수자 인권과 결부된 '시설'의 일이고, 그 시설에 매개되어 사회적 소수자에게 '좋은 일' 하겠다고 그들을 격리하고 '치료'하는 일을 서슴치 않던 사회복지 일반의 일이다. 따라서 나쁜 사회복지로 일어난 일을 좋은 사회복지로 과연 대체할 수 있는가, 근본적으로 사회복지의 일을 사회복지로 과연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해 우리는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사회복지가 어째서 사회운동과 그토록 철저하게 다른가에 대한 하나의 답이 여기에 있다. 운동은 소수자에게 '좋은 일' 하겠다는 차원이 아니라, 소수자가 누구이고 무엇 때문에 그리 정의되며 그들에게 '좋은 일'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를 근본적으로 되묻고, 그 존재와 물음 아래에 놓인 조건과 구조를 함께 바꾸어나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 이 글을 쓰면서 참고한 자료 및 연구들은 다음과 같다.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청소년 성소수자의 탈가정 고민과 경험 기초조사 결과보고회』 자료집, 2021.6.26.

「'전환치료 피해자' 트랜스젠더의 눈물 : 동성애 '치료'한다며 "귀신 들렸다" 무차별 폭행」, 『매일종교신문』 2016.4.25.  
박정미, 「하수도, 피해자, 위험(에 처)한 여자 : 19~20세기 초 '의료-도덕 정치'와 성매매정책의 형성」, 『사회와 역사』 120, 한국사회사학회, 2018.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형제복지원연구팀 편, 『절멸과 갱생 사이 : 형제복지원의 사회학』,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21 중 2부.

김대현, 「일본의 우생학에서 미국의 우생학으로 : 해방 이후~1950년대 한국의 소년범죄 담론」, 『역사문제연구』 49, 역사문제연구소,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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