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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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내 인생의 퀴어영화 #28
: ‘종로’, 이미지의 역사 -공간 아카이브 영화 <다다-익선>-
1.
이번 호에서 다룰 내 인생의 퀴어 영화 <다다-익선>(2017~)은 정말 “내 인생의” 퀴어 영화다. 나는 <다다-익선>이란 프로젝트로 ‘종로’의 공간을 영상 아카이빙하고 있는 권욱이다. 아마 웬만해선 다들 내 작업이 생소할 거다. 지난 5월 익선동 야간개장에서, 또 지난 5월 인디포럼에서도 상영을 했었지만 말이다. 그러함에도 내 작업을, 그것도 작업자 스스로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는 글을 쓴다는 건 참 난처하고 민망한 일이다. 그것도 하필 유수의 퀴어 영화들이 다뤄졌던 [내 인생의 퀴어 영화] 섹션에 말이다.
2.
하루를 한 장의 사진으로 담아 그것을 또 하루하루 포개 쌓았다면, 과연 ‘종로’는 얼마큼의 사진이 쌓일까. 어설픈 기록으로만 따져도 ‘종로’엔 자그마치 반세기의 시간이 누적되어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이번엔 ‘종로’를 하나의 거대한 이미지라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우리는 각자 하나씩의 픽셀(pixel)을 맡아 그 거대 이미지를 채우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간밤에도 ‘종로’에선 무수한 이미지들이 또 각자의 앵글로 담겼을 터다. 그리고 그 픽셀, 각자의 장면들이 모여 지금의 ‘종로’의 이미지를 이룬다. 내 작업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종로’의 역사가 가지는 그 거대한 부피감에 압도되는 느낌을 보란 듯이, 아주 자랑스레 내보이고 싶었다.
자료1. David Hockney, 1985, “Place Furstenberg, Paris August 7, 8, 9, 1985 #1”
: 데이비드 호크니의 사진 작업은 동일 공간이나 인물을 시간차를 두고 촬영하여 그것을 콜라주한 것을 특징으로 한다. 한 공간 안에도 이렇게 그 층위는 다채롭게 드러난다.
3.
그런데 그동안 우리가 면밀히 야사를 쌓아왔음에도 막상 손에 쥘 수 있는 실질적인 ‘종로의 역사적 이미지’는 척박하리만치 없다. 물론 그동안 감히 누가 이 공간의 이미지들을 남길 엄두나 냈을까. 그런데 우리의 ‘종로’를 방문하는 낯선 새 손님들은 여태껏 ‘종로’였던 이곳에서 남긴 새 사진의 캡션을 이젠 ‘익선동’이라 새기고 있다. 그동안 ‘종로’를 일궈온 희고 거뭇한 얼굴을 한 사내들의 이미지의 역사, 그 두터운 지층 위로 생경한 얼굴들이 기민하게 쌓여간다. 그래서 이대로라면 미래의 누군가가 ‘종로’의 이미지를 찾고자 했을 때, 폭격처럼 난무하고 있는 ‘익선동’ 이미지의 지층을 어렵게 파고 내려가야만 유적처럼 겨우 ‘종로’를 만날 수 있게 될 거다. ‘익선동 젠트리피케이션’이라 일괄되는 이 거대한 도시의 흐름 가운데 ‘종로’에서 우리가 쌓아온 이토록 거대한 부피의 역사, 이토록 기꺼운 문화를 다시 얼굴을 잃은 역사로 쓸쓸히 묻어둘 수만은 없었다.
4.
그래서 나는 현재 ‘종로’의 우리 업소들을 일일이 방문해 그 내부의 공간을 빼곡하게 담고 있는 중이다. 지금껏 삼십 여 곳의 공간을 방문했고, 스물 일곱 곳의 공간을 허락받아 영상으로 담았다. 맨 처음엔 향수 어린, 내가 자주 가던 몇몇 곳 정도만 겨우 촬영을 진행이나 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그래도 이만큼 왔다. 그리고 물론 <다다-익선>이란 프로젝트 이름처럼 ‘종로’의 모든 업소들을 일일이 다 방문할 계획이다. 그래서 막대한 부피의 아카이브 기록으로 우리를 배제하고 방관하며, 이 공간에서 자연스레 잊혀져가길 바라는 주류 정치와 자본의 논리에 보란 듯이 저항하고자 한다. 우리가 이만큼이나 이 공간을 단단히 일궈왔노라고 떳떳하게 증명해보이고자 한다.
자료2. 2017. 10. 17. 익선동 일대에 게시됐던 정의당 현수막 ⓒ권욱 Kw.H
5.
공간들을 방문하다 보면 대한민국 게이의 민족지학적인 공통의 분모들을 나름의 눈썰미로 발견하게 된다. 그 점이 작업을 진행하는 데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흥미로운 부분이다. 예를 들면, ‘종로’의 바(bar) 형태의 업소마다 어김없이 TV/프로젝터의 영상 매체가 전면에 드러났단 점이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 보통 딱 한잔만 제대로 마시길 좋아해 바를 자주 가는 편인데, 보통의 일반적인 바의 경우에서는 음악도 낮게 흐르며 숙연한 분위기였고, 그렇기에 눈이 현란한 영상물을 상영하는 매체를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유독 꽤 많은 ‘종로’의 바에는 적적한 시선을 달래줄 TV가 전면에 있음을 촬영을 진행하며 발견했다. 이미 누구나 다 익히 알던 사실이었을지 몰라도, 영상 매체가 게이바에 어김없이 달렸다는 게 무엇을 함의하고 있을지 각자 나름대로 짐작해보면 재밌지 않을까. 더불어서 게이바에 가라오케 스테이지가 있다는 것 역시 ‘종로’에서만 볼 수 있는 퀴어한 풍경이지 않을까.
그리고 일명 ‘게리단길’에 위치한 일련의 업소들과 자칭 ‘고추잠자리 골목(누누호텔로부터 이어지는 돈의동 일대)’에 오랜 시간 자리해온 업소들을 비교해보기도 했다. 가장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차이는 ‘개방성’이었는데, 이는 가게 전면을 무엇으로 인테리어 했느냐에 따라 갈렸다. ‘게리단길’ 업소들은 보통 쇼윈도를 연상시키는 전면 유리로 인테리어를 한 데 반해, ‘고추잠자리 골목’은 대부분 완벽하게 외부의 시선을 차단하고 있다. 한껏 단장하고 나온 김에 게리단길 쇼윈도 상석 자리에 앉아 시선이라도 많이 팔리면 그것 역시 이득이지 않겠나. (그런데 지금은 쇼윈도의 개방성이 게리단길을 경유해 익선동을 찾아 헤매는 새 손님들의 시선 때문에 도리어 불편한 장치로 뒤바뀌어 버렸다.) 그러나 우리 선배들이 주로 가는 업소들은 작은 문 틈새로 새어나오는 가는 빛을 보고서야 영업하는 줄 겨우 알 수 있을 만큼 폐쇄적이다. 폐쇄성에서 개방성으로, 이렇게 단순히 업소 전면 인테리어를 통해서만 해도 우리가 ‘종로’에서 견뎌 성취해낸 역사가 한껏 묻어난다.
덧붙여 ‘고추잠자리 골목’ 업소들의 영업시간 역시 흥미로운 부분이었는데, 그 골목의 업소들 가운데 오후 3시부터도 사장님이 나와 영업을 시작한 곳이 적지 않았다. 짐작컨대 게이의 ‘복덕방’이 바로 그곳일 거다. 우리 선배들의 공동체 문화는 또 그렇게 자신 나름의 방향성을 안고 묵묵히 흘러가고 있다. 가끔 나는 이대로 재미없게 나이가 들 것만 같아 그때가 되면 무얼 하며 사나 생각이 많은데, 그 골목의 선배들을 오며가며 마주치다 보면 왠지 흐뭇한 마음이 인다. 사실 선배들의 업소를 촬영하고 돌아와 영상 편집을 하며 물끄러미 그 공간들을 둘러보면 참 눈물겹게 감격스러운 순간이 많았었다. 창연하게도 네온이 번뜩이는 그 공간 하나하나하나 괜히 아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자료3. 낙원동에 위치한 “토마토” 실내 전경 ⓒ권욱 Kw.H
6.
<다다-익선>은 미래의 그 누군가를 위한 오늘의 손짓이라 여기고 작업하고 있다. 우리가 여기, ‘종로’에 이토록 있었다고. 또 그래서 그 미래엔 지금의 우리처럼 ‘종로’를 부디 막연히 상상해야만 하는 역사의 이미지로 마주하지 않길 바라는 바람이 가장 크다. 그리고 그 이미지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여기 ‘종로’에서 단단히 쌓아온 역사를, 가꿔온 문화를 못 견디게 자부할 수 있으면 한다.
그러나 나 혼자서는 결코 이걸 다 해내지 못 한다. 디지털 시대에서의 이미지는 찍는 것making이 아니라 채집taking하는 것이라고 한다. 셀피샷이든 친구들과의 단체샷이든 종로에서 사진을 찍을 때마다 마지막으로 한 장씩 여유를 갖고 지금 ‘종로’의 공간-순간들을 둘러보고 채집해보는 건 어떨까. 당장 인스타그램만 해도 ‘#종로3가’ 해시태그가 마냥 “힙한 익선동”의 이미지로만 가득히 채워지고 있는데, 그 일방적인 이미지의 흐름 가운데서 우리 ‘#종로’의 이미지의 역사도 각자 새겨가는 걸 제안해본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종로’에 빚진 추억-기억에 대한 나름의 보답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마지막으로 덧붙여 홍보를 하나 하자면, <다다-익선>을 오는 7월에 열리는 제 18회 한국퀴어영화제(KQFF)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먼저 본 사람들은 익히 잘 알겠지만, <다다-익선>은 관객에게도 무척이나 고된 수행을 요구하는 작업이니 전날 푹 자고 오거나 극장에 와서 모자란 잠을 채워도 좋겠다.
<다다-익선> 감독 / 권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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