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이력이 쌓인 시민단체가 스스로 자신의 역사를 정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료를 수집 정리하여 집필에 착수하고 책을 완성하는 데엔 만만찮은 공력이 들어가는데, 당면한 업무에 바쁜 단체 스스로 이런 일에 착수했다는 것은 그만큼 뒤를 돌아볼 여유와 공력이 생겼다는 뜻이 된다. 그렇게 아무나 만들 수 없는 책이 지난 9월 비로소 완성을 보았다. 1년 가량 힘쓴 기록물팀의 노고를 기리고, 편찬된 <친구사이 20년사>의 면면을 소개하기 위해 "<친구사이 20년사> 발간 기념파티"가 9월 20일 친구사이 사정전에서 개최되었다.
작업을 총괄하고, 특히 20년사 발간을 위한 펀딩에 앞장서주신 기록물팀장 철민 형과, 친구사이 대표 남웅 형의 축사가 있었고, 팀원들이 각자 맡았던 작업과 소회를 털어놓는 자리를 가졌다. 특히 책의 편찬에 결정적인 역할을 도맡은 팀원 미카의 발언이 인상적이었다(당사자의 구체적인 소회는 지난 8월호 소식지에 실렸다). 뒤켠으로 완성된 책과 다과들이 준비되었고, 축하의 의미에서 간단한 주류도 곁들였다. 책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책에서 소개된 내용들을 사진과 함께 요약한 화보들이 전시되었다. 이로써 1년간 진통 끝에 출간된 20년사의 기념회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친구사이 20년사>(이하 <20년사>)가 1차 완간되었지만, 기록물과 관련된 일이 아직 모두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향후 새로 발굴될 자료나 수정 사항이 적용될 개정판 발간을 비롯, 스캔 파일 형태로 수합된 기록물들의 DB 구축 및 제공 서비스에 대한 고민, 완료되지 못한 영상기록물 정리의 과제가 남았고, 무엇보다 단체 스스로 현재, 그리고 앞으로 생산될 기록물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관리할 것인가 하는 화두를 남겼다. 그 때 그 때 정리/보관되지 않은 자료는 쉽게 멸실되며, 디지털 파일로 작성된 자료의 경우 특히 그러하다. 일례로 <20년사> 편찬 과정 중 친구사이가 공표한 성명서를 수합하는 과정에서, 2001-2002년의 성명서를 하나도 찾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체계적인 기록물 관리/보관 매뉴얼이 확립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여러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성과라 할 수 있을 <20년사>의 완간으로, 친구사이는 현재의 모습과 미래의 방향을 비추어볼 수 있을 탐탁한 거울 하나를 갖게 되었다. 지나간 과거는 과거일 뿐일 수도 있고, 현재에 임할 때 과거를 보는 것이 꼭 의무는 아니겠으나, 단체가 이때까지 걸어왔던 과거들이 현재를 이해하는 데 가장 유력한 반면교사가 되리라는 점은 확실하다. 친구사이에서는 지난 <친구사이 20> 행사를 준비하면서, 기획 단계에서 논의되었던 단체의 향후 발전 방향을 지속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자 '담론팀'을 신설하였고, 현재 담론팀은 <20년사>의 내용을 숙독함은 물론, 여타의 퀴어 관련 문헌들을 검토하며 단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이처럼 이번에 발간된 <20년사>가, 친구사이를 비롯하여 퀴어 대중들, 나아가 한국 사회와 세계 LGBT 운동에 때로는 참조할 모범으로, 때로는 극복될 반례로서 미래를 설계해가는 데에 널리 이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밀
내년 공연도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