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4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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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주관적인 게이 용어 사전
"뽈록이"
"어머 요년 봐라, 미모가 아주 물이 올랐네."
"언니, 지금 질투하시는 거에용? 홍홍"
"얘, 저 뽈록이 년들 지금 뭐 하는 거니?"
"어머어머 완전 훈남~"
대단히 끼스럽기 그지 없는 대화다. "이 년"으로 시작해서 "저 년"으로 끝나는 게이들의 "끼 털리는" 화법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2014년 현재까지 아무런 위화감 없이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가끔은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저렇게 거침없이 말을 쏟아낼 수 있을까. 그리고 궁금함이 생긴다. 어째서 이런 말투와 어휘들은 사용되는 것일까. 여기서는 끼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는 않고, 그 여성 지향적이면서 동시에 여성 비하적인, 그 말들에 대해서 알아본다.
"뽈록이", <가슴>ㅡ<여성성>에 대한 동경 또는 혐오?
게이들의 이러한 어법에는, 특정한 이미지가 있다. "당당한 여성"이라는 이미지다. 자기 자신을 아주 애정하고, 남들의 시선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여성, 즉 게이들이 아주 사랑해 마지않는 "디바"의 캐릭터다. 게이들은 디바의 모습에서 동경심을 느낀다. 엄정화나 이효리, 마돈나가 게이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다. 게이들의 이 말투는, 결국 디바의 모습을 자신에게 투사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반면에 이는 여성 비하적이기도 하다. 본래 여성인 '디바'가 사용했어야 했을 이 말투는 남성인 게이들이 사용함으로서, 여성 비하적인 측면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남성이 여성을 일컬어 '년'이라고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아주 모욕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게이 문화에 익숙치 못한 사람도 그렇게 느낄 것이다. 단어들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성질은, 게이들 특유의 유머로도 완전히 희석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어법은 게이들 사이에서는 동질감을 형성시키거나 분위기를 풀어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외부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는 그닥 좋게 볼 수 없는 것이다.
이 어법의 양면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이 은어가 바로 "뽈록이"다. '보갈', '년' 등의 표현 역시 여성 비하적인 의미을 환기시키는 단어들이지만, 뽈록이는 말 그대로 여성 혐오적 표현이다. (자신들과 비교했을 때)가슴이 뽈록 나왔다고 해서 뽈록이다. 왜 게이들은 여성의 가슴에 집중하여 이런 표현을 만들게 된 것일까. 여성의 '가슴'(=여성성)에 혹하는 이성애자 남성들에 대한 아쉬움이 담겨져 있는, 말하자면 여성을 '경쟁자'로 인식하거나, 그렇게 희화하는 상황에서 나온 어휘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렇기에 가슴에는 곧 이성애자 남성에 대한 동경과, 그들에게 사랑"받는" 여성에 대한 혐오가 동시에 존재한다.
가슴은 옛부터 여성성의 상징이었다. 전통적으로 '여성적'이라고 여겨졌던 모든 측면들(보아지는 것, 만져지는 것, 먹히는 것...)이 여기, 가슴에 담겨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 하지만 게이들의 "뽈록이"라는 은어에는 그 고전적인 여성관이 그대로 녹아있다. 여성은 이성애자 남성들에게 사랑받아야만 하는 존재이고, 이성애자 남성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우리'는 그들을 질투할 수밖에 없다-라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동시에 심지어 자기연민의 의미까지 깔려있는 것이다!
자, "뽈록이"라는 단어에는 젠더 비하, 신체 비하, 자기 비하의 의미가 숨겨져있다. 이는 끼에 대한 비난이라기 보다는, 상황과 자리에 맞는 언어 선택의 측면이다. 가령 어느 여성 청자는, 게이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고, 문화라 여겨지는 이 언어를 크디큰 폭력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당당하고 자신있게 사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남에 대한 비하로 이어져서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자존감은 남을 낮추는 데서 오지 않는다. 누구에게는 당연한 것이 누구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 마치 여러분이 체감하고 있는 것과 같이.
[172호][활동스케치 #4]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관람기 (1) : ‘친구사이’를 보는 친구사이, ‘지보이스’를 보는 지보이스
2024-11-04 19:08
기간 :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