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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람 사이의 터울 #1 : 내 마음에 맞는 곳은 어디일까
2014-01-20 오전 1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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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1월 

사람 사이의 터울 #1 : 내 마음에 맞는 곳은 어디일까

 

 

 

처음 게이 커뮤니티에 힘겨이 발들였을 때, 나는 이 곳에서 사람들을 만났고 거기서 애인을 만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해피엔딩으로 나의 이야기를 끝내고 싶었습니다. 물론 오프라인 게이 커뮤니티에 나오고 나서 나의 삶은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고, 내가 게이란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끙끙 앓는 일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게이 커뮤니티에 나오고 내 정체성을 인정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인생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요. 게이 커뮤니티도 '사람 사는 곳'이니만큼, 다른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여러 어려움들이 존재합니다. 

 

즉석으로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축복과 저주의 게이 어플을 피해 오프라인 공동체에 처음 발들였을 때는, 나와 동류인 사람들과 좀더 사람답게 관계맺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어쩌면 게이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내가 게이인 걸 잠시 잊게 만들어주는, 그러니까 게이인 것 이외에 내가 가진 다른 여러 모습들을 꺼내어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지요. 이성애자들 사이에서 나는 유독 '게이'이거나, 그것을 애써 말하지 않는 데에 신경이 집중된다면, 같은 게이들끼리 있으면 좀더 편안하고 나를 보다 포괄적으로 드러내고 나누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그들과 즐겁게 교유하며 자기를 은폐하느라 지친 심신을 치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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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이곳도 내가 바라는 낙원은 아니란 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남자를 좋아하는 게이들이 모인 게이 커뮤니티이기에, 그 안에서 연애와 얽힌 문제가 터지면 구도가 아주 복잡해집니다. 원리적으로 만인이 만인에게 섹슈얼할 수 있는 축복과 저주가 그 속에 함께 작동되는 것이지요.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뒷말이 많아집니다. 고등학교 때나 대학교 학부생 시절 동아리에서 주로 발생하던 연애 암투극과, 인맥에 따라 한 개인에 대한 호불호가 홍해 갈리듯 갈리는 장관도 연출됩니다. 이런 걸 몇 번 겪다보면, "게이들이 더 지독하더라"면서 커뮤니티에 염증을 느끼고 떠나는 이들도 종종 발생합니다.

 

아니면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커뮤니티에 들어오니 몇몇 게이들이 그야말로 사회성의 ABC도 못 갖춘 채로 인간관계에 서투른 티를 내는 것입니다. 그들과 대화하다보면 어느새 신경줄이 남아나지 않지요. "아니 게이고 뭐고 일단 사람부터 돼라"는 말이 목까지 차오르기도 합니다. 물론 그들이 사람사귐에 서툰 것에는, 자기 존재의 일부를 부정해야 하는 게이 특유의 성장 배경이 일정 부분 작용하고, 따라서 그런 모습들 중엔 과거 내가 그랬을 지도 모르거나 실제로 그러했던 미숙함과 닮은 것이 있지만, 어쩐지 그렇기 때문에 더 싫어집니다. 또한 서툰 이들은 서툰 이들대로,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 처음 맞이하는 인간관계의 룰을 학습하느라 꼭 몇 년 전 백치같던 사춘기 괴물로 돌아간 것만 같고, 그 사실이 거듭 속상해 더 외토라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게이들끼리 모였다고 해서 뭔가 좋을 줄 알았다가, 외려 더 큰 상처를 입고 안으로 숨는 사람들이 발생합니다.

 

또는 이런 경우도 있겠지요, 이해받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들이 그렇게 조금이라도 나눠지고 난 후에는, 그 이해받고팠던 한들이 쌓이고 쌓여, 여기선 나를 이해해주겠지 싶었던 마음이 뒤틀어지거나 기대에 어긋날 때는 더 크게 앵돌아지기도 합니다. 마음에 무얼 쌓아두던 이들은 어떻게든 그렇게 동티가 나는 모양인지, 애초에 손이나 내밀지 말지 사람 기대하게 만들고 실망시키는 게 더 미워서, 어떻게든 혼자 꾸려온 인생 사이로 성큼 손잡아온 이들이 그렇게 한번 마음에 안 찼을 땐, 차라리 여느 속없는 이성애자들보다 곱절로 싫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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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생각해보면 이는 게이 커뮤니티의 한계이기에 앞서 어느 정도 필연적으로 예견되는 바이기도 합니다. 게이 오프공동체를 처음 맞닥뜨리고 나면 그 속에서 인간관계를 통째 다시 배우는 기분을 느낍니다. 게이들과 공개적으로 교유해본 적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이 드러나 자라오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그것들이 새로이 커나가는 과정은 그리 쉽지만은 않고, 기쁨만으로 도배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과의 사귐에 필요한 마음과 스킬이 붙는 과정이 으레 그러한 것처럼요. 

 

물론 게이 커뮤니티 인간관계의 룰이란 것이 여느 이성애자 집단과 같으면서 또 다르다는 게 "내가 게이라서 이런 서러움을 당한다"는 자괴의 근거가 되기도 하고, 또 적지 않은 나이에 데뷔한 '초짜 게이'들은 내가 이 나이 먹고 또 이런 '모양빠지는' 인간관계의 지옥도를 또 겪어야 하냐면서 고개를 저을 수도 있습니다. 그처럼 한번 제대로 안 드러내보인 자신의 내면을 호환 가능하도록 다듬는 것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는 넓게 보면 사람이 모이는 어느 공동체에나 있을 수 있는 문제입니다.

 

어느 공동체를 가건 그 속에서 나를 풀어놓고 사람들 사이의 나를 다스리고 공글려야 하는 의무는 같습니다. 또한 어떤 공동체에 들어갔다고 해서, 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남들에게 끝내는 이해받을 수 없을 개별자의 운명이 일거에 해소되는 것도 아닙니다. 한마디로 게이 커뮤니티에 입성했다고 해서 인생이 개벽되지는 않습니다. 그 속에서도 결국 인간으로서의 외로움과 세상 속에서 내가 감당할 불화는 계속 가져가야 하는 부분이지요. 결국 우리는 모두가 혼자고,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누가 게이고 누가 이성애자냐를 떠나서 인간이면 누구나 그런 것이지요.

 

바로 이 점이, 어쩌면 게이들이 내심 그토록 바라왔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나는 게이가 아니라 '사람'이고 싶다는 꿈 말입니다. 내가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이 '혼자 있는 고독'을 이야기하고, '사람 사이의 불화'를 이야기하고, '능란하거나 부족한 사회성'을 논할 수 있기 위해, 내가 비로소 '사람'임을 말하기 위해, 그렇게 망설임 끝에 게이 커뮤니티를 찾고 그 속에서 이름모를 복마전을 치러왔던 것은 아니었는지. 내가 어떤 性의 입술에 입맞추고 내가 어떤 性의 음부를 핥고 내가 어떤 性의 인간들과 섹스를 하는지를 떠나서, 인간이면 누구나 할법한 '보편적인' 관계와 존재의 고민을 비로소 늘어놓을 수 있게 되기 위해, 내가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사람'임을 체감키 위해, 이제까지 그리도 먼 길을 돌아왔던 게 아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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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모이면 말이 많아지고 문제가 생기는 것은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고 게이 커뮤니티 또한 그렇습니다. 더불어 사람을 대하고 사랑하고, 물리치고 참아넘기는 일련의 방법과 경험과, 노하우와 비전에 대한 말들은 이미 차고 넘치도록 많습니다. 물론 그것들은 대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거나,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차원으로만 도움을 줄 수 있지요. 결국 어디에 있든지 사람은, 혼자 있는 방법과 함께 사는 방법 사이를 원심력과 구심력처럼 앓고 사는 운명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오래 포기하고 있던 것들을 덥썩 껴안은, 달콤한 관계의 꿈 아래 스스로 자아낸 낙담과 배신의 아픔을 함께 예비하고 있었을 유약한 사람들에겐, 그런 안팎으로부터의 중압이 더 크게 와닿았을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이고 싶지만 좀처럼 사람이 되지 못하던, 누구의 죄인지 모를 상황 속에서 죄없는 마음이 죄없는 시선에게 오염될까, 매연같은 사람들 속을 떠나가던 여린 사람들의 뒷모습이 자꾸 떠오릅니다. 

 

마음 고갯길을 한 굽이 넘어서고 보니, 그렇게 그리운 얼굴들이 있습니다. 부디 이 다음에 만나는 때엔 우리 서로 보다 온전한 사람으로 만나자고, 굽잇길 너머 지는 노을에 기약없는 기약으로 흐릿이 써보는 짓무른 마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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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이의 터울" - 소수자의 공동체 속에서 벌어지는, 너무나 보편적인 이야기들을 다루고자 합니다.

 

친구사이 정회원  / 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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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연결 프로젝트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성소수자 자살예방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