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4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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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가 나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담담한 어조로 자신이 레즈비언이라고 밝혔기에, 나도 담담하게 친구에게 ‘나는 이성애자야’ 라고 밝혔다. 묘한 기류가 흘렀다. 그때 난 속으로 살면서 내가 사람들에게 ‘나는 이성애자입니다’라고 말 할 기회가 몇 번이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 세상은 이성애가 기준이 되었기 때문에 ‘나는 이성애자입니다.’라는 말이 깃털보다 가벼운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깃털같이 가벼운 말이 왜 성소수자들에게는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말이 지구보다 무거운 돌덩이가 되기 시작했을까? 이것이 내가 동성애자들의 인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계기이다.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생각들이 나의 행동을 즉시 촉발시키지는 못했다. 당장의 수능성적이 먼저였고, 대학에 와선 학점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눈앞의 일들을 해결하는 것만이 당면한 현실을 향한 최선의 발걸음이라고 생각하던 중, 학교에서 <변태소녀 하늘을 날다>라는 동아리의 찢겨진 자보를 보았다. 흔히 쓰이는 변태의 의미가 아닌, 變態의 의미를 담고 있는 동아리의 이름은 그 중의성만으로도 세상을 향한 도발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그 동아리의 자보가 찢겨진 것이다. 이는 친구의 커밍아웃만큼이나 나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볼테르는 말했다.“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 말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다." 우리는 볼테르의 명언을 가슴 속에 새기며 시대를 말하는 지식인이 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왜 성소수자들이 말할 권리를 짓밟는 것인지 궁금했다. 소통을 하자며 손을 내민 그들을 짓밟는 오만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궁금했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한 번쯤은 나서서 직접 참여해보는 것도 기회가 되리라 생각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나처럼 성소수자들을 왜곡된 시각으로 보지 않으려는 이성애자도 있다고... 일종의 이성애자들을 위한 변명을 위해 시작하기도 했다.
사실 야외액션단을 하는 지금도 거창하게‘동성애자들의 인권을 한층 더 끌어올려야만 한다.’라고 내 스스로 의무감을 지우고 싶진 않다. 내가 하는 일이 다만 이성애자들에게 ‘난 게이가 싫어, 난 호모포비아야’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말들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절감하게 해주고 싶었다. ‘난 이성애자들이 싫어’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는 불편함을 알게 하고 싶었다. 최소한 동성애의 호불호를 떠나서, 그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망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보는 태양이 나의 고등학교 친구가 보는 태양과 똑같이 눈부시길 바라며, 허공을 향해 한 주먹 더 질러본다.
[172호][활동스케치 #4] SeMA 옴니버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관람기 (1) : ‘친구사이’를 보는 친구사이, ‘지보이스’를 보는 지보이스
2024-11-04 19:08
기간 : 10월
이밀
내년 공연도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