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군부대 중대장이 사람들이 다니는 복도에서 중대원의 성기를 손등으로 때리고 양 젖꼭지를 잡아 비튼 경우
② 둘 다 군인인 동성 커플이 마침 휴가 기간이 맞아 집에서 성행위를 한 경우
설마, 하겠지만 맞다. 아니어야 할 것이 답이 돼버리는 이 시대적 추세를 따르시라. 답은 ②번이다. 대법원의 판결에 따르면 말이다.
얼마 전 대법원은 군형법상 추행의 의미를 정리하면서 중대장이 중대원들의 성기를 때리고 젖꼭지를 잡아당긴 사건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군형법에서 말하는 추행은 ‘동성애와 같이 객관적으로 혐오감을 일으키고 선량한 성도덕에 어긋난 성적 만족 행위’에만 해당된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 몇 번이나 확인해야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미국 캘리포니아주 대법원 등이 동성 결혼을 허용해야 한다고 결정 내리는 판에 한국 대법원은 동성애를 ‘객관적으로’ 혐오적이고 비도덕적인 것으로 규정한 것이다. 대법원의 결정은 성적 지향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국가인권위원회법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더군다나 피해자가 있는 명백한 성폭력에 대해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선고했다. 앞으로는 가해자의 행위가 성적 욕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더라도 군형법으로는 아무런 처벌을 할 수 없다. 가령 남성 지휘관이 부대원들을 즐겁게 하려고 그 앞에서 한 남성 병사의 바지를 벗기고 장난을 치는 일이 생겼다고 생각해보자. 그 병사가 심한 성적 모멸감을 느꼈다 해도 군형법으로 고발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인권단체에서 지속적으로 개정을 요구한 군형법 조항 자체에 문제가 있다. 추행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라고는 ‘계간’(남성 간 성행위를 비하하는 말)밖에 없다. 서로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도 ‘계간’은 할 수 있는 것이다 보니 추행이라는 말이 아리송해진다. 결국 쌍방이건 일방이건 성적 만족이 있는 경우만 추행이고, 그렇지 않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는 추행이라 볼 수 없는 이상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성적 모욕감을 주는 성폭력에 면죄부를 주게 돼버린 이 조항을 이제는 바꾸지 않을 수 없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동성애와 성폭력을 다루는 데 있어 군의 특수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이다. 대법원은 군법의 특성상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같은 권리는 고려해서는 안 되고 집단의 군기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군인이라는 말에 인(人)자가 들어간 것처럼 군인도 사람이다. 사람으로서 상처 입고 분노하고 사랑한다. 서로 사랑하면 스킨십을 나누고 싶어하고, 성폭력을 당하면 괴로워한다. 이번 판결에서 이런 ‘사람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다. 사랑은 범죄고 성폭력은 무죄다.
인권침해가 있을 때마다 ‘군이라는 특수성 때문에’라는 말만 반복하는 것은 그만둘 때가 됐다. 인권에서의 문법은 ‘군이라는 특수성이 있다 하더라도’이다. 평등권과 행복추구권 같은 기본권을 생각하며 이 논리를 펴야 할 곳이 바로 법원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런 기대를 배반했다. 정말이지 판사님들에게 묻고 싶다. 만약 당신이 병사라면, 사람들 보는 앞에서 지휘관이 성기를 툭툭 치고 젖꼭지를 잡아당길 때 “지휘관님은 아무 죄가 없습니다!”라고 외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밀
내년 공연도 기대할게요!